1990년대 ‘열린교육’의 이념이 확산되자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체제가 바뀌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교사가 아니라 학생을 중심으로 한다는 취지에 반대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제7차 교육과정이 고시되기 일 년 전인 1996년 한겨레신문에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개혁이 가져올 역효과를 우려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교사들의 목소리가 학교 현장에 적극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교육 당국이 자본주의 논리를 강조하여 수요자 중심의 교육 개혁을 주장한다면 마땅히 교사들에게도 단결권을 포함한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해줘야만”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수요자 중심 맞춤형 교육은 오늘날 각 대학의 비전과 목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수요자’라니, 교육에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다. 하지만 각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학생을 위한 것인지가 더 의문스럽다. 방학 중이던 지난 8월 10일 ‘재이수 기준 및 성적 등급 비율 변경’ 관련 규정인 학사관리에 관한 규정 제29조의 3, 제46조 2항이 개정되었다. 재이수의 경우 성적부여 상한선을 B+이하로 제한하고, 동일과목 재이수 횟수를 2회로 제한하도록 개정되었다. 성적등급 비율의 경우는 A등급을 30% 이하로, A와 B 등급을 70% 이하로 낮추어, C등급 이하를 30% 이상 부여하도록 개정되었다.

상대평가제도는 졸업정원제가 실시되던 시절의 유산이다. 당시 서울대는 C 이하의 학점이 무조건 50%로, 외국어대는 30%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졸업정원제가 보완되면서 상대평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1984년 당시 문교부에서는 이 문제를 대학 자율에 맡겼다. 하지만 1993년 당시 교육부에서는 대입부정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학사관리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다시 상대평가를 들고 나섰다. 그리고 1999년 전국 30여개 대학이 학점을 일정 비율씩 강제하여 초과할 경우 전산입력이 되지 않도록 하였다. 학점 인플레이션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이 조치를 수용함으로써 “공급자”와 “수요자”가 졸지에 공동정범이 된 것이다.

지난 8월 21일에는 ‘성적평가 기준 및 방법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도 개정되었다. 성적등급을 지키지 않는 교원에 대해 교수업적평가에서 감점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가는 대신 성적정정 수강인원이 10% 이하인 경우에 한해 패널티를 면제하도록 하고, 수강인원이 10명 이하인 경우 절대평가예외교과목으로 인정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분할통치(divide and rule)가 연상된다. 이번 개정에는 공급자라는 교수도, 수요자라는 학생도 없다. 오로지 대학의 학사관리를 평가하는 정책당국만이 주연이다. 대학교육의 목표와 비전을 들어 정책당국과 당당히 협의할 수 없다면 이참에 대학 비전을 수정하는 것도 고려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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