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론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다

I. 북미문제로서의 북핵 문제

대책이 쉽지 않다. 6차 핵실험에 이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실험 발사하는 막무가내의 김정은은 정말 대책을 불허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핵 도발에 분노하고 제재하는 것으로는 북핵 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과 소련의 미온적 제재 동참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반쪽에 머무는 것도 그 한 이유이다. 

그동안의 북한 제재가 어떤 성과를 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 정권의 내성만 키워준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대북제재가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만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강대강(强對强)의 대북 제재는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를 강화시켜 정권 안보를 꾀하려는 김정일의 계산에 말려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북미문제이다. 북핵 당사자는 남한과 북한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이라는 것이다. 남한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북한 가까이에 인접해 있는 까닭에 북핵 위기의 동반적 당사자가 되고 있을 뿐이다. 북미관계가 본질이라는 것은, 북핵 해법의 키를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북핵은, 미국이 북한 정권의 안전보장을 약속해 주는 데서 그 해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II.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한계와 가능성  

북한이 대한민국을 도발하기 위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한국은 대화 중심의 대북정책을 펴 나갈 것으로 널리 기대 되었다. 여기서 대화 중심이란 ‘선대화-후북핵해결’이다. 대화와 교섭 그리고 교류협력을 통해서 북핵 해결을 도모하자는 점진적-평화적-장기적 접근을 뜻한다. 그런데 북한이 6번째 핵실험을 하자 대화는 하루아침에 실종되어 버렸다. 익숙한 풍경이다.

대표적으로 6차 북핵실험 이후에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대북제재 동참을 요청하였는데, 이는 문정부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초보적이고 즉흥적인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교적인 수단으로 북한 위기를 풀어야 한다”며 상식을 들먹이는 푸틴 대통령의 노련함만 부각되었다. 물론 푸틴대통령도 인접 국가에서 핵실험 하고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외교를 운운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 정부도 대화와 제재의 병용 입장이라면, 남북문제에 희망이 없다. 전쟁 중에도 대화하고 교섭한다는 데, 핵실험 한 번 더 했다고 너무 쉽게 대화 접근을 포기해 버린 데 아쉬움이 크다. 사태가 심각할수록 더 대화하고 만나고 교섭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외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대화 우선의 입장을 고수해 나가는 것이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문재인정부가 유엔아동기금과 세계식량기금 등 국제기구를 통해 800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방침을 고수하면서 대화의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영유아와 임산부를 지원하는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해서 시기조절을 타진하는 아베 총리의 요청에 “정치적 상황과 무관”함을 적극 표명한 건, 북핵문제에서 ‘운전대 역할’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자세로는 박수 받을 만하다.

대북특사는 언제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일정에 맞춰 보내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건 오만한 발상이다.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언명한 바 그대로, 대북특사를 보내고 김정은과 만나고 하는 일련의 남북 대화 및 접촉은 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1순위가 되어야 한다. 남북대화는 물밑 접촉에서든 공개적이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추진해 나가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북핵이 사드를 배치하기 위한 구실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실제 사드배치로 인한 북핵 방지의 실효는 크게 의심스러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드배치는 별 군사적 실익이 없이 괜스레 한국이 동북아의 화약고임을 자처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라는 토를 달기는 했지만, 결국 사드배치를 강행하였다. 북핵에 대한 국민정서를 반영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무언가에 쫓기고 끌려가는 느낌이다.

사드 배치 결정 이전에 대북특사 등을 통한 남북 대화가 있었어야 했다. 혹여 이러한 문정부의 주저에는 한미동맹 우선을 내거는 미국의 반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까지야 하겠느냐는 생각을 지우면서도, 선거 유세 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회담할 수 있다”고 호언한 바 있어서, 미양국이 먼저 북미대화를 하려고 선 남북대화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거두기도 쉽지 않다.

더욱이 올 5월 스위스에서 북미접촉이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대화를 통해 북미문제인 북핵 문제에서 주도권을 미국이 쥐고자 한다고 보아 무방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국내-외에서 북핵 폐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남한도 핵개발을 하든 아니면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서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창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남북대화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전쟁만을 염두에 두는 공포의 균형으로 불안한 평화를 이루는 게 바람직한 것일까는 의문이다.

더욱이 군사력 차원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이 우월적이라면, 북한이 핵실험 몇 번 했다고, 동북아 세력균형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 보인다. 하늘이 무너질 듯 호들갑 떠는 안보위기론이 기승을 부릴수록, 득을 보는 건 김정은과 미국의 군산복합체일 뿐이다. 그들 간의 주기적인 주고받기식 적대적 상호의존에 휘둘리지 않도록, 좀 더 냉철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III. 남북대화에 집중하자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남한 국민들 사이에 더욱 심화되는 것은 대북 ‘공포감’이 아니라 대북 ‘혐오감’이다. 혹 공포의 균형으로 대북 공포감은 해소될지 모르지만, 악화일로에 있는 대북 혐오감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대북 혐오감을 줄여야 ‘부산발 열차가 런던까지 가는 세상’을 꿈꾼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얘기에 진정성이 실린다. 왜냐하면 북한 협조 없이 그리고 남한 국민의 호응 없이 부산발 유라시아 열차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대화 말고 북한을 제재하고 응징을 할 어떤 수단을 갖고는 있는 것일까? 지난 정부에서도 북한이 도발하면 응징한다는 앵무새 소리만 있었을 뿐, 남은 건 남북관계의 악화와 한반도의 신냉전화 진전이었다.

미중러일 4강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교차하는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 과연 조금 더 힘이 세다고 어떤 제재-응징이 효과는 있기는 한 것일까? 특히나 응징은 까딱 잘 못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으로 비화될 지도 모르는데,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응징하자고 우리 국민들이 찬성은 할까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야 할, 같은 민족의 특수한 관계를 가진 이웃이다. 그러한 남북관계의 독특성과 유일성에 비추어 보면, 그게 푸틴 대통령이든 트럼프 대통령이든 시진핑 주석이든 우리가 할 일은 대북제재 동참이 아니라 남북대화의 채널이 되어주길 부탁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민족의 화해와 교류협력을 주도하면서 그렇게 당당하게 외교에 임하는, 정도를 걷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통일이든 남북 관계개선이든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데서 시작한다. 비군사적 대응전략이 중요하고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가 필수이다. 언제부터인가 북한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장마당이야말로 북한 주민의 삶을 좌우할 미래 동력이자 지주대인 것으로 널리 파악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간명해 진다. 북한 핵실험에 일비일희 하지 말고, 어떻게든 북한의 장마당을 확대-심화시켜, 여기서의 활력과 에너지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변화 추동력이 되도록 하는, 아래로부터의-장기적-점진적-경제생활적-사회문화적 접근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할 일은 대북제재에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장마당을 적극 지원하고 남북대화 채널 가동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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