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추첨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선거제도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며 공직을 추첨 원리에 의해서 분배하자고 주장한다. 직접민주주의자들 역시 선거제도의 한계를 강조한다. 

추첨제 같은 것이 선거제의 대안이 될 수는 있을까. 예외적 영역에서라면 모르겠으나, 추첨제가 일반적으로 선거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추첨제는 선거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개선을 촉구하는 항의적 주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점은 선거제는 여태까지의 인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최고의 민주주의 실현방법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 대한 냉소, 정치 및 정치인에 대한 냉소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의식이다. 냉소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권자의 정치적 냉소를 확대시키는 것이 기득권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남도 그렇다고 물 타고, 결국 정치란 것이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냉소를 키워서 비판을 회피하는 책략은 너무도 흔한 것이다. 필요한 것은 냉소가 아니라 질책이고 개혁이다.

근본적으로 보면, 미디어 상황의 변화와 함께 지금 우리는 민주정치에 관한 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통합적 가치를 지향하는 구심력의 정치보다는 파당적 가치에 대한 충성을 우선하는 원심력의 정치가 풍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가치관의 다양화와 정보기술의 변화와 결합되면서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정보기술의 변화가 가져온 직접민주제적 참여를 긍정하면서도 통합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를 복원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없다면, 과거로의 회귀이거나 정치적 통합체의 해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기술적 변화의 불가역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미래의 예측은 정치적 통합체의 아나키즘적 해체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것이 미래의 모습이라고 가상해 보더라도, 그런 변화는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 구심적 정치 복원의 과제를 깨달아야 한다. 설령 자신의 입장이 당파적이더라도 그것을 보편적 논거와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6ㆍ13 지방선거 정국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시대적 사명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정치인들이 시대적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대학이라도 그러한 사명을 촉구하여야 한다. 대학은 그런 통합적 가치의 지향 위에서, ‘최소한’ 입후보자들의 대학 정책에 대해서 만이라도 감시와 통제, 그리고 의제 설정 기능을 다해야 한다. 대학은 말해야 하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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