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4ㆍ3 70주년을 맞아 20세기 동아시아 제노사이드를 주제로 ‘4ㆍ3 70주년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를 마련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제주 4ㆍ3을 비롯해 광주 5ㆍ18, 하얼빈 731부대, 난징대학살, 오키나와 양민학살, 대만 2ㆍ28, 베트남 전쟁 등을 다룬 예술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 전시회는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한 희생자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해 동시대적인 인권회복과 상생의 가치로 승화시키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예술작품들은 제주도립미술관 1층과 2층에 나눠 전시됐다.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는 총 12명이다. 전시회는 3월 31일부터 6월 24일까지 진행된다.

△ 1층 : 동아시아 제노사이드의 역사

<제주ㆍ중국ㆍ대만ㆍ오키나와ㆍ베트남>

1층 전시회는  중국의 1급 화가로 유명한 권오송 작가의 ‘일식’으로 시작된다. 일식은 이번 전시회를 위해 특별하게 만든 수묵화로써 가로 2m 15cm, 세로 5m 50cm에 이르는 아주 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하얼빈 731부대에 관한 내용이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잘라서 보면 위에는 암흑으로 덮혀있고 아래는 유골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일전쟁 당시 731부대의 부대장은 의사였다. 이들은 사람 3000명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행한 후 시신을 묻었다. 작가는 생체실험 당한 사람들의 유골들이 발견된 모습을 그려 하얼빈 731부대의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을 표현했다.

▲강요배 작품 <불인(不仁)>, 2017, 캔버스에 아크릴, 333×78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제공 제주도립미술관

그 옆에는 강요배 선생의 ‘불인’이 전시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이 작품은 포스트 트라우마 전시회를 위해 특별히 빌려왔다. 특별전이 끝나는 6월 24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강요배 선생은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명이다. 강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중미술 작가다. 4ㆍ3 시리즈로 70여개의 작품을 남겼다. 4ㆍ3과 관련된 많은 일과 사건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과 참혹한 현상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불인’은  작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사람이 없는 게 특징이다. 작가는 제주도 조천 북촌의 모습을 아주 거칠게 그려 담았다. 가까이서 볼 때는 추상화같은 느낌이지만 멀리서 보면 마을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다. 제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팽나무가 왼쪽에서 뻗어있다. 뒤에는 거친 파도가 일고 있다. 정부와 미군정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 속에서 미군이 마을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게 불사른 마을의 모습들을 표현했다.

제주에 4ㆍ3이 있었다면 대만에는 1947년에 일어난 2ㆍ28사건이 있다. 대만은 50년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군들이 대만에서 물러난 뒤, 중국에서 국민당 정부의 일개 사단 병력이 와서 대만을 지배하게 됐다.

대만의 주요 요직은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 다 차지하게 됐고, 많은 부패와 탄압이 시작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담배전매’였다.

한 아주머니가 밀매로 담배를 판매하다 단속 에 걸리게 됐다. 이에 진압하던 사람이 아주머니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많은 대만 사람들이 너무하지 않느냐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군중을 향해 발포를 하게 돼 무고한 시민이 사망하게 됐다. 다음날 분노한 군중들은 관청에 몰려 항의를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강경진압을 하며 1만 8천명에서 2만 8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게 된다. 이 사건이 대만의 2ㆍ28이다.

중국정부는 2ㆍ28 사건을 숨겼다. 하지만 1947년 이 사건은 황영찬(黃榮璨)이라는 목판화가에 의해 알려지게 된다. 황영찬은 2ㆍ28 사건을 담은 판화를 상하이 신문에 게재해 알렸다. 1952년  중국 정부는 황영찬을 잡아서 총살한다.

이후 대만작가 메이딘옌이 오마주 작품을 만들었고 이번 전시회에 이 판화가 전시됐다.

또한 색맹 검사표를 이용해 ‘당신은 2ㆍ28이 보입니까?’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1987년까지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됐던 2ㆍ28 사건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대만의 정치적 이슈이자 비극적 트라우마다. 메이딘옌은 저항정신을 표현하며 대만이 중국에 종속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면 2ㆍ28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베트남의 딘큐레 작가가 수집한 작품들도 전시됐다. 수채화로 그린 추상화가 6개가 있고 나머지는 70개의 드로잉과 영상 2개가 있다. 이 작품들이 딘큐레가 그린 것은 아니다.

딘큐레는 1968년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났다. 전쟁 중 딘큐레는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망명을 가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성장하고 미술과 사진을 공부하게 된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베트남 전쟁을 말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국적인 시각 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베트남 사람들의 시각을 수집해 알리기 위해 1994년 베트남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참전군인들 중 화가들을 만나며 미술 작품들을 통해 베트남 사람들의 시각을 수집했다.

난징대학살의 아픔을 표현하는 작품도 있다. 대만 작가 대홍즈의 ‘모두 난징대학살로 사망했다’는 2차세계 대전 당시 1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머리와 젊은 여성의 몸을 결합한 작품이다. 중국측의 주장에 따르면 난징 대학살로 인해 6주 동안 30만명이 죽었고 8만명의 여성이 강간 후 살해 당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폭력적이고 비이상적인 난징 대학살의 모습을 표현했다.

더불어 난징대학살기념관에 있는 우웨이산이라는 중국 예술가의 작품을 사진으로볼 수 있다. 난징대학살로 인해 아이를 잃은 슬픈 모습을 닮은 가파인망을 비롯해 피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대에 의해 학살당한 ‘오키나와 양민학살’의 아픔을 기록한 작품들도 있었다. 야마시로 치카코 작가는 오키나와 전쟁과 전후 오키나와 민중들의 투쟁과 삶을 다루는 영상을 만들었는데,이 영상이 전시회 내에서 상영됐다.

또한 오키나와 전쟁 당시 강제로 연행된 조선인과 종군 위안부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킨조 미노루의 ‘한의 비’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두 눈을 가린 채 일본 순사에 의해 끌려가는 아들을 보며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1층은 하얼빈 대학교의 판화과 교수이자 판화작가인 김승의 ‘중화계시록’작품으로 마무리된다. 

▲ 김승 작품 <중화계시록>

엄청 큰 목판화다. 하얼빈 731부대의 내용을 담았다. 작품을 잘 보면 판화의 시점이 마지막 순간에 죽어가는 사람이 위를 쳐다보는 장면이다. 큰 구덩이가 있고 일본군들이 밑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생체실험을 한 사람들의 시신들을 묻는 일본군들이 자기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상황이 너무 잔인해서 보기힘들 정도의 처참함을 표현했다.

△ 2층 : 제주 4ㆍ3과 광주 5ㆍ18 속 민중들

2층은 제주를 대표하는 박경훈 작가와 광주 출신 홍성담 작가의 판화가 각각 50점씩전시됐다.

박경훈 작가는 현재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이사장으로 제주 4ㆍ3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더불어 5ㆍ18 작가로 유명한 홍성담 작가는  1980년 5월 18일 당시 광주 사태가 일어났을 때 대학생으로 직접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을 목판화로 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5월 시리즈 중 50점을 전시했다. 판화 속에서 민중들이 항쟁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2층의 분홍색 코너에는 4ㆍ3 작품들이 회색 코너에는 광주 5ㆍ18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장정열 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후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살펴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가 보인다”면서 “직접 현장에서 겪었던 예술가들의 경험이 담긴 예술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20세기 동아시아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마주하고, 다시는 대량학살과 같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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