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라벨이명곤 역, 누멘, 2008<자아와 그 운명(Le moi et son destin>

루이 라벨은 가브리엘 마르셀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그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중세의 스콜라철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상의 노선이나 특정한 도그마를 넘어 ‘인간의 정신’이라는 보편적인 지평에서 세계와 인간의 운명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정신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저서들 중에서도 『자아와 그 운명(Le moi et son destin)』은 이러한 그의 정신을 아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이 책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정신’ 혹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민했던 16명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주제별로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해주고 있다. 이 철학자들 중에는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들 ‘헤라클레이토스’, ‘니체’, ‘키르케고르’, ‘베르그송’ 그리고 ‘야스퍼스’ 등도 보이지만 전문가가 아니라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들 ‘흐네 르 센느’, ‘라베르토니에르’, ‘장 귀통’, ‘민코프스키’, ‘장켈레비치’ 등도 보인다. 시대와 분야를 초월하여 ‘인간의 자아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던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이를 분석하고 묵상하면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자신의 목소리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일반인이나 전문적인 학자들을 막론하고 철학적인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환영할 만한 책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언명이 있은 이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철학사 속에서 끊이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최소한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적인 삶이란 어떤 삶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역사나 시대 그리고 범주와 분야를 초월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관심 동일한 흥미를 가진 주제이며, 누구도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주제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철학은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정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지나간 시대의 철학자들의 글들을 읽는 이유는 이를 통해 우리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또 우리자신을 알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 지니고 있는 관심은 한 철학적 사상에 대해 가지는 심리학적이고 역사학적인 관심을 넘어서는 것이다. 각자의 철학적 사상들은 우리들의 정신에 대해서는 하나의 용기요, 보기이며, 또 증거이다. 바로 이러한 것으로부터 이 책 안에서 하나의 동일성 안에서 수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어느 곳에서 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오늘날처럼 집단이 위력을 가졌던 적은 없다. 개인과 그 정신을 형성하게 하는 진리에 대한 진지하고 섬세한 내적인 관심은 그 힘을 잃었다.” 이는 사실이다. 현대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이지만 또한 아이러니 하게도 개인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분위기이며, 아무리 위대하고 고매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대중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의 전문성은 묻히고 만다. 하지만 세상사람 모두가 알아주거나 혹은 세상 그 누구도 몰라준다고 해도, 자신이 형성한 자신의 정신과 삶, 즉 ‘나는 누구인가’하는 ‘나의 본질’ 혹은 ‘나의 자아’는 변화하거나 소멸될 수 없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불교의 진리가 의미하는 것처럼 ‘나 자신의 자아’ 혹은 ‘나의 삶’이라는 것은 전 인생을 통하여 오로지 ‘나 스스로만이’ 형성하고 일구어 갈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것이다. 각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추구하여야 할 것,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게 할 인생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누구였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보편적인 진리요, 개개인 모두를 위한 가장 큰 선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각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추구하여야 할 것, 또 다른 모든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 추구해야할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8, 10, 누멘,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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