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유산 제주, 그 아름다움 너머’
제주4ㆍ3 70주년 기념 특별 사진전 개최

제주4ㆍ3 70주년기념 ‘세계자연유산 제주, 그 아름다움 너머’ 사진전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부출입구 회랑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진전시가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주진오)과 제주4ㆍ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5월 16일(수)부터 7월 3일까지 제주4ㆍ3 70주년 기념 특별사진전 ‘세계자연유산 제주, 그 아름다움 너머’ 사진전을 박물관 1층 부출입구 회랑 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 사진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주4ㆍ3, 이젠 우리의 역사’ 특별전의 연계 행사로 기획됐다.

이번 사진전은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제주의 뒷모습에 담겨 있는 아픈 상처를 공감하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제주민예총 소속 사진작가 등이 직접 찍은 사진 32점이 전시됐다. 제주의 대표적인 풍경이자 제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푸른 바다와 해변, 오름, 돌담, 아름드리 팽나무뿐만 아니라 성산일출봉, 정방폭포, 천제연폭포 등 유명 관광지도 살펴볼 수 있다.

제주4ㆍ3, 가슴에 남은 상처, 땅에 남은 흔적

제주도는 2007년 우리나라 최초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육지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안고 있는 제주도는 연간 1,500만 명이 방문하는 국제적인 관광지다. 최근에는 해마다 1만5000명 이상이 아름다운 경치와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제주로 이주해 오고 있다.

하지만 제주의 그 아름다움 너머에는 제주 사람들의 아픔이 서려 있다.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사람,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이처럼 제주 사람들 대부분은 제주4ㆍ3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그만큼 제주4ㆍ3은 제주사람들의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그 상처는 제주땅 곳곳에 슬픔의 눈물로 드리워져 있다. 제주의 자연 중 4ㆍ3의 아픔을 품지 않은 곳이 없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중 많은 곳이 4ㆍ3당시 집단 학살이 이뤄졌던 곳이거나 끔찍한 참상이 벌어졌던 주민들의 희생지였다.

제주시 관덕정은 조선시대 제주관아의 일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관덕정과 그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주요 관청들이 모여 있었던 제주의 정치, 행정의 중심이었다. 이런 까닭에 각종 행사와 기념식, 집회 등이 관덕정 광장에서 이뤄졌다.

특히 제주4ㆍ3 발발의 도화선이었던 1947년 3ㆍ1절 집회 역시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시작돼 이곳에서 사건화 됐다. 4ㆍ3의 와중에는 사살된 무장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의 시신이 걸리기도 한 격동의 공간이었다. 관덕정 광장은 제주의 민주화운동, 4ㆍ3진상규명 운동, 탐라입춘굿 등이 행해지는 제주 역사의 중심이기도 하다.

또한 낭만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해변이 당시에는 양민들의 핏물로 가득찼다. 성산일출봉 인근 우뭇개동산과 터진목은 1948년 11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성산읍 성산리, 오조리, 온평리, 난산리, 수산리, 고성리 등의 주민들이 이곳에서 희생됐다. 또한 구좌면 세화리, 하도리, 종달리 등에서 붙잡혀온 주민들도 비극을 맞았다.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던 마을, 지금은 아름드리 팽나무와 무너진 돌담만을 흔적으로 남긴 ‘잃어버린 마을’ 역시 그러한 곳이었다. 애월읍 봉성리 자리왓은 250여 년 전 남평 문씨 일가가 터를 잡고 집성촌을 이뤄 살던 곳이었다.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로 약 30여 호에 150여 명의 주민들이 밭농사를 짓고 자손을 낳으며 살아가는 행복한 안식처였다. 그러했던 곳이 1948년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소개(강제이주)하라는 토벌대의 명령이 내려지자 주민들이 아랫마을로 이주했다. 그리고 곧이어 벌어진 초토화 작전으로 마을은 완전히 전소돼 잿더미가 됐고, 이 와중에 5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됐다.

‘잃어버린 마을’은 1948년 11월 이후 중산간 마을이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주민들이 마을을 떠난 후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은 마을을 말한다. 당시 주민들이 참혹한 광경이 떠올라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고향마을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최근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카페와 타운하우스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4ㆍ3유적지로는 ‘잃어버린 마을’ 외에도 4ㆍ3성터, 은신처, 학살터, 수용소, 주둔지, 희생자 집단묘지, 비석 등이 있다.

2003~2004년 발간된 <제주4ㆍ3유적> Ⅰ,Ⅱ에 따르면 ‘잃어버린 마을’은 108개 마을, 4ㆍ3성터 65개소, 은신처 35개소, 학살터 153개소, 수용소 18개소, 주둔지 83개소, 희생자 집단묘지 6개소, 비석 41개소에 달한다. 곧 제주도 전역이 4ㆍ3이 남겨 놓은 땅의 흔적이라는 의미이다.

제주의 아름다움 그 너머에 담긴 아픔 공감

제주4ㆍ3 70주년을 맞아 4ㆍ3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참여도 크게 늘었다. 사진전을 관람하던 이재선(45ㆍ서울 중구)씨는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제주에 이러한 비극과 참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면서 “제주에 가족여행을 가면 반드시 4ㆍ3평화기념관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물관에서는 3월말에 개막한 ‘제주4ㆍ3, 이젠 우리의 역사’ 특별전의 관람객 수가 현재까지 5만여 명을 훌쩍 넘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관람객 추이를 반영해 지금 열리고 있는 특별전도 사진전 폐막일인 오는 7월 3일까지 연장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진오 관장은 “제주4ㆍ3특별전과 이번 사진전을 통해 많은 관람객들이 제주4ㆍ3의 역사를 이해하고, 평화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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