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경험하지 못한 공연과 전시, 예술문화체험 행사 진행
옛 건물의 멋스러움, 이제는 올바른 도시재생이 필요할 때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학생들은 더위를 피해 시내의 영화관과 카페를 간다. 친구들과 함께 흥행한다는 최신 영화를 보고, 카페 자리에 앉아 긴 대화를 나누지만, 항상 가던 장소에 아쉬움과 익숙함을 느낀다.

제주대학교 이봉훈(사회학과 2)씨와 오진훈(토목학과 4)씨는 “매번 같은 곳에서만 노니 어디를 갈지 고민이다”면서 “근처에 다양한 놀 거리가 많지만, 시간 때우기 일 뿐 기억할 만한 문화체험공간이 부족하다”며 도시의 한정적인 놀이 공간을 지적했다. 이처럼 건물 숲이 우거진 도시는 학생들에게 더는 충분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 이제는 기존과 다른 특이한 도시 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귀포 도심에는 색다른 문화예술인 공간 ‘서귀포관광극장’이 있다. 제주 시내에서 281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 일호광장에 내려 바다 쪽으로 걸어가면 매일올레시장 앞 이중섭 거리가 나온다. 거리 안으로 들어가 걷다 보면 중간 언저리에 낡고 오래된 건물 하나가 보인다.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하얀 빈틈을 보이고, 담쟁이 넝쿨이 그 빈틈을 채우고 있어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건물이 주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이목이 끌린다. 이 건물이 바로 서귀포관광극장이다.

오래된 서귀포관광극장 건물의 담쟁이 넝쿨은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서귀포관광극장은 1963년 개관한 서귀포 최초의 영화 상영장이다. 하지만 1999년 극장 화재와 경영난이 발생해 오랜 기간 거리의 흉물로 방치됐다. 그러다 2012년 극장은 리모델링을 통해 서귀포 원도심의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서귀포시 정방동 주민으로 구성된 서귀포지역주민협의회가 위탁 운영하면서 극장에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 및 예술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극장 앞은 아무도 없는 매표소와 함께 전종철 작가의 ‘경계선 사이에서2’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파란색 구조의 설치작품은 문 하나를 두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데, 오래된 극장에 들어가면서 현재를 떠나 과거와의 만남을 표현하고 있다. 극장 내부는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벽 ‘고재’와 임시로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쇠파이프, LED 전광판과 텍스트로 둘러싸인 사슴 조형 ‘생명의 빛’ 작품이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데 모여 낡은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생생한 작품들을 뒤로하고 극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노천극장이 나온다. 지붕 없는 극장은 여름 저녁의 고유한 서늘함을 느끼게 해주며, 벽면을 타고 다니는 담쟁이 덩쿨과 밤에 보이는 별은 일상의 답답함으로부터 해방감을 선사한다. 극장 안은 누구나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고, 무대에 오르거나 좌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서귀포관광극장은 다양한 공연과 전시, 예술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공연과 전시는 매주 주말 저녁에 노천극장에서 열린다. 공연은 뮤지컬, 오페라, 재즈, 국악 등의 다양한 장르로 진행되며, 제주에서 접하기 힘든 장르 공연에 특화돼 있다. 또한 공연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닌 지역민들과 예술가들이 직접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여 공연과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서귀포관광극장 공연에서는 기획가와 예술가, 관광객과 시민들이 너도나도 할 거 없이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공연과 전시회는 무료다.

지난달에 열린 공연으로는 ‘대한민국 파바로티’ 테너 김호중의 초청공연과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의 ‘이어도를 향한 타악울림-바람유희’공연, 국악, 현대무용, 즉홍, 저글링, 한국춤, 콘트라베이스, 기타, 가야금, 타악, 소리,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춤과 여러 종류의 악기가 만나는 각양각색의 춤을 선보인 ‘서귀포국제무용제’가 열렸다.

극장은 추억의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상영하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 배우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와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를 상영했다. 올 하반기에도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더불어 극장은 이중섭 거리 테마에 맞춰 은지화와 제주민화그리기 체험을 진행한다. 여기서 은지화는 이중섭 화가가 생전에 담뱃갑 은종이에 그린 그림으로 예리한 송곳이나 펜으로 윤곽선을 그린 후, 검은색 또는 흑갈색의 물감이나 먹물 머금 솜, 헝겊을 문질러 만든 것이다.  유명 화가 이중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체험 중 하나다.

과거 서귀포관광극장은 서귀포 최고의 문화 향유 공간이었다. 서귀포에서 유일한 영화 상영장이었으며, 서귀포학교들의 학예회 장소였다. 그리고 안익태 작곡가처럼 유명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였다. 당시 극장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은 매우 좋았다. 극장의 인기를 실감해주는 에피소드로는 70대 노인이 열흘 내기 아이를 들쳐메고 영화를 보러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비록 중간에 화재와 경영난으로 오랜 기간 방치됐지만, 극장은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다. 현재는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추억되며, 관광자원으로써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에 사람과 오랜 세월 함께한 옛 건물은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지붕 없는 극장에 노천 담쟁이 넝쿨이 보인다.

서귀포지역주민협의회 이재정 예술감독은 “기존 건물을 활용한 서귀포관광극장은 시민 누구나 편안히 사용할 수 있는 공간과 시 낭송회, 지역 음악인들의 공연장, 다문화, 청소년, 노약자 등이 즐길 수 있는 공연 프로그램, 관광객들이 즐기는 제주문화(색깔)등을 무대 위로 올리고 체험하는 곳”이라며 서귀포관광극장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더불어 정영자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는 “서귀포관광극장은 오래된 건물이라 화려하고 정리된 공간은 아니지만, 그 공간이 주는 힘은 상당하다. 세월이 만든 공간, 세월 자체가 문화예술인 공간은 잊혀진 감성·추억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추억이 있는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며 옛 도시 공간의 가치와 올바른 도시 재생 방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 서귀포관광극장처럼 사람들의 기억을 담고 있는 옛 도시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낙후된 건물들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고, 투자자와 개발업자는 재개발을 통해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 공간은 점점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되고, 결국 사람들은 획일화된 공간에 쉽게 질린다. 앞서 말한 학생들이 겪는 고민과 같은 맥락이다.

도시란 어느 정부나 개발업자들이 만든 계획적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면서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공간이다. 우리는 이런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도시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한다.

한편, 서귀포관광극에서는장 7월에 다양한 공연이 준비돼 있다.

다음은 서귀포관광극장 7월 공연 안내다.

△7월 1일(월) 18:00 순천·고흥 음악인_‘김승희 밴드’ 교류공연

△7월 7일(토) 18:00 국악 3인조 ‘풍경소리’ 공연

△7월 14일(일) 18:00 세바 합창단 정기공연

△7월 15일(일) 18:00 이정희 트럽펫 협연

△7월 21(토) 18:00 TRIO-K는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 명의 젊은 연주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팀으로 비올라, 피아노,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돼 기존의 앙상블 편성과는 차별화된 색다른 음악적 표현을 서귀포관광극장 무대 위에 올려본다.

△7월 22일(일) 18:00 대한민국 뮤지컬 콘서트 ‘안갑성 김민주 뮤지컬 갈라 콘서트’

△7월 28일(토) 18:00 동네 콘테스트 ‘꽃을 든 나도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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