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 미(01~04년 학생기자)

그는 ‘빨간펜’ 선생님이였다.

대학시절 남자친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그는 늘 빨간 색연필을 들고 있었다.

흰 종이에 인쇄된 기사를 건네면 이곳저곳을 붉게 색칠했던 그였다. 처음 기사를 쓰고 그의 조언을 기다렸을 때에는 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A4 용지가 원래 빨간색인 것 마냥 시뻘개져서 돌아왔다. 쓰는 기사가 점점 많아질수록 붉은 표시는 조금씩 사라졌다. 흰 종이가 그 어떤 표시도 없이 깨끗한 흰 색으로 돌아온 날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마치 내가 뭔가 이뤄낸 기분이 들었다.

기사가 붉은 색을 넘어 특정부분이 반복해 색칠돼 마치 ‘핏빛’처럼 보이는 날이거나, 폭풍 잔소리를 한 날에는 그는 자판기 커피를 사주곤 했다.

당시에는 신문사 문을 열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 순간까지도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곤 했는데,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날엔 항상 신문사 앞 벤치 앞으로 불러내 주던 그였다. “지금 저 병 주고 약 주시는 거예요?”하면서 당돌하게 물으면서도 ‘내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대학에 가는 날에는 일부러 학보사 앞의 큰 나무 아래 벤치를 지나치는데 그때마다 그가 생각났고, 그와 함께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3년 내내 나를 울고, 웃고, 힘들게도, 따뜻하게도 만들었던 나의 사수다. 고작 한 학년 차이였고, 지금은 친구 같은 한 살 차이 선배지만 학보사 시절 그에게 배웠던 글쓰기와 후배를 대하는 마음은 지금 내 모습을 만들었다. 대학 3년 내내 뻔질나게 들락날락 거린 학보사 시절은 지금의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호칭도 ‘선배님’이 아니라, 학년에 따라 ‘기자님, 부장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마치 내가 언론인이 된 것 마냥 자신감도 키워갔다. 나의 글이 학교를 넘어 제주 지역사회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두둑한 배짱을 키워나간 것도 모두 그때의 호칭과 조언과 치열했던 순간들 덕분이다. 당시엔 매주 제주대신문을 발행하던 시기였던지라 낮에는 수업을 듣고 취재를 하고 밤에는 기사를 쓰고 편집을 했는데, 수많은 밤을 새며 그 시절을 보내니 나의 체력도 ‘악바리 근성’을 띠며 강인해졌다. 

이 글을 쓰며 그 때를 떠올리니 나의 빨간펜 선배님이 그립다. 다시 학교를 찾아 자판기 커피를 뽑고 그 벤치에 앉으면 그때 그 맛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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