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심사평

현택훈 시인

제주대학교 백록문학상은 제주 문학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기대가 큰 문학상이다. 젊은 날에 시가 위로라도 될 수 있는 것일까. 취업 문제로 바쁜 와중에 시를 붙잡고 있는 점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놓쳐버린 풍선처럼 시는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대학생들이 이렇게 그 풍선을 잡고 놓지 않고 있어서 든든하다, 라고 섣불리 말하기 미안해진다. 이번 제39회 백록문학상 시 부문에는 응모자 수도 많았고, 작품들도 좋은 작품들이 많아 수상작을 고르기 쉽지 않았다. 눈에 확 띄는 작품도 중요하지만, 가능하면 이 지난한 시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려는 응모자를 찾으려고 했다.

 최리엘(초등교육 3)의 시 「방파제」는 방파제의 기능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잔잔한 밤바다’와 같은 운동장에 몰아치는 파도는 ‘별’이었다는 점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하지만 응모한 시들 대부분 비슷한 어조로 단조로움이 있어서 수상하지 못해 아쉽게 되었다.

 임하은(초등교육 3)의 시에서는 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시들을 읽으면서 나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서 좋았다. 응모한 시들은 대부분 화자가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인데 이 점이 시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 시를 계속 쓴다면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쓸 것 같다.

 김주원(국어국문3)은 시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메시지를 담는 실력이 있다. 시 「교합」은 당선작 후보로 가장 먼저 올려놓은 작품이었다. “두 세계가 가장 가까이 맞닿은/ 비밀의 숲에서/ 당신을 만났다”라는 표현만으로도 이 시가 빛났다. 안타깝게도 응모한 다른 시들의 힘이 약했다.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시를 쓰면 좋겠다.

고은아(국어국문 3)의 시들은 고백적이다. 이 고백은 진솔한 면이 있어서 읽기 좋다. 시 「우엉김밥」은 편하게 얘기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감추지 않고 말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응모작 중에서 시 「옷장을 통해서」는 대상과의 거리 조절이 괜찮았다. 그리고 대상과 이미지를 연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믿음이 갔다. 이 점은 생활에 대한 고민 속에서 체득한 방법이리라. 폐쇄성과 엑소더스를 동시에 지닌 옷장을 통해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한 점을 칭찬하며 이 시를 가작으로 선정한다.

 당선작은 유세은(물리학 1)의 시「달디 단, 시나몬 롤」이다. 유세은의 응모작 다섯 편 모두 새로움이 있었다.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운 표현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감탄했고, 겉으로 드러난 정황 속에 숨은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음식 이야기이지만 이면에는 서늘한 주제가 있었다. 시「딸기 바닐라 수영장」은 너무 선명해서 아찔했다. 응모한 시들 중에서 어느 작품을 타이틀로 할지가 수상자를 고르는 것만큼 어려웠다.

시 「달디 단, 시나몬 롤」은 이 시대의 대학생다운 작품이다. 대학생은 청소년기에서 어른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그때만 쓸 수 있는 시가 있다면, 그때 꼭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내적 갈등을 겪겠는가. 이 시는 세월호 참사가 연상된다. “이 멋진/ 콩나물국밥 집 유리창 너머로” ‘서울’을 본다. 시는 울어야 할 때 통곡하지 않아야 독자는 더 공감한다. 응모자는 놀랍게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슬픔을 ‘서울’과 ‘제주’라는 원근법을 변형하면서 시를 전개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시는 지금 여기에서 출발한다. “내 광대는 지금 어떤 기울기로 바뀌고 있을까”(「레이스 속치마」)라는 말이 응모자에게 돌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울기로써 새로운 시를 계속 쓰기를 바란다. 지금의 모습만 잃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시인이 될 수 있는 응모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쉽게도 입선하지 못한 응모자들은 낙담보다 다시 도전을 하시기를 기원한다. 눈부신 작품보다 오래 반짝이는 시를 쓰겠다는 각오로 시를 놓지 않는다면 좋은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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