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심사평

조중연(소설가)

제주도가 시끄럽다. 제2공항, 비자림로 확장공사, 영리병원 등 각종 난개발로 제주도는 그야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에 맞먹는 케케묵은 색깔론 카드를 들고 나왔다. 제주판 신냉전주의자들은 전국 각지를 떠돌며 ‘반대만 일삼는 전문시위꾼들’이 제주도를 분열시키는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불온한 사상으로 제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도민 화합을 저해하는 원흉이 바로 이들 ‘육지것’이라는 마녀사냥까지 등장했다. 그 행태가 간첩이나 빨갱이 사냥을 연상시킬 만큼 저열하고 가증스럽다.

문학은 이러한 현실에 맞서 처절한 자아 성찰을 하고 준엄한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마녀사냥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백록문학상에서 이런 주제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아니, 최근 몇 년간 개발로 인해 서민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삶의 질이 저하되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토끼굴 가족」은 개발에 밀려 점점 외곽지로 도태되어가는 가족을 그리고 있다. 가족을 위해 보금자리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중문관광단지를 떠오르게 한다. 땅을 판 원주민들이 보상으로 받은 돈을 모두 써버리고 종국에는 여미지 식물원 앞에서 ‘노점 미깡 장시’로 전락한 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작품 속 밀감 저장창고에서 비밀스럽게 발견한 토끼가 이미 죽은 쥐였다는 장면이 특히 아프게 읽힌다.

「어둠이 쏟아지고」는 20여년 전 사고로 죽은 동생에 대한 회고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래도 왼쪽에 한라산을 끼고 달리니 집에 간다는 게 실감났다”는 문장이 정답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 아이들이 들고 있던 하얀 찔레꽃과 인동꽃만이 남아 있었다”나 “자귀꽃이 어느새 비로 바뀌어 내렸다”는 문장에서는 신화적 상상력이 느껴진다. 자귀나무의 실 같은 꽃잎, 선녀다리, 서양민들레, 아카시아 같은 토속적 소재가 등장하는 등 남다른 감수성과 디테일의 차별화가 눈여겨볼 만하다.

이 작품은 급기야 서린의 꿈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그리고 서린이 동생을 앗아간 LNG 가스관을 덮고 있는 시멘트를 해머로 내리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그것은 유년 시절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옛모습을 잃어가는 제주에 향해 내리치는 준엄한 죽비소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이야기를 무척이나 수다스럽게 표현하고 있고, 구성도 평면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럴싸한 이야기는 있는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라 중언부언하는 모양새다. 좀더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와 마침맞은 서사 전략, 그리고 문장력 연마가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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