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권 오름을 대표하는 곳
정상분화구가 주는 신비함과 위대함
4ㆍ3 참극의 상징, 다랑쉬굴

≫오름의 왕국 < 끝 > - 다랑쉬오름

제주도의 구좌 권역, 특히 송당리는 오름이 많이 모여 있어 ‘오름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대표적인 오름을 꼽으면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 그리고 밧돌오름 등 크고 작은 많은 오름들이 있지만 그 중심에 있고 ‘오름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며 화산체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손꼽히는 다랑쉬 오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다랑쉬오름에서 본 모습(위). 오름을 찾은 탐방객이 정상을 향해 걷고 있다(아래).

 


◇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의 입구모습

기자가 찾은 다랑쉬오름은 유명세에 비해서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기자 또한 택시를 이용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부터 보이는 오름의 외형을 보면 불편했던 기억도 잠시, 싹 잊게 된다. 다랑쉬라는 이름은 오름에 쟁반같이 뜨는 달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하여 이름 붙은 제주말로 한자식 표현으로 월랑봉이라고도 부른다. 다랑쉬오름은 동부지역의 오름들 중에서 비고(산의 순수한 높이)가 가장 높다. 한복 치마를 벌려놓은 듯 가지런한 외형은 원뿔모양이며 산세가 가지런하고 균형이 잡혀있다. 입구에는 탐방안내소가 자리잡고있다. 오름 사진을 전시한 공간과 안내소가 함께 자리잡혀 있는 건물과 오름아래 정자나 평상 등 다른 오름에서는 보지 못한 갖춰진 시설이었다.

초입지에는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탐방 진입로에서 곧바로 경사가 시작된다.
급경사를 위한 배려일까? 경사 중간에는 쉼터가 두 군데나 존재한다. 급경사가 지나고 길게 펼쳐진 탐방로는 지그재그형식으로 바뀌었다.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앞쪽으로 다랑쉬오름 앞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아끈다랑쉬오름과 성산일출봉, 우도까지 펼쳐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상에 도달해 한라산을 바라보면 오름 군락은 한라산 앞에 자식들처럼 보인다.  정상에서 만난 울산에서 온 관광객 최경진씨는 “구좌에는 많은 오름들이 있지만 이름이 가장 예뻐서 여기에 오게 됐고 ”며 “정상에서 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그림 같아 아름답다”고 다랑쉬의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다랑쉬의 정상에서

백록담 깊이와 비슷한 정상의 분화구는 다랑쉬오름의 자랑이다. 분화구 또한 안쪽 까지 선명하게 보이며 그 모습은 신기함을 넘어 위대함까지 느끼게 한다. 과거에는 굼부리 안으로 출입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출입이 금지돼 가까이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기자를 오름까지 태워주신 택시 기사님이 분화구에는 가을이라 독이 오를 때로 오른 뱀들이 많아 절대 근처에도 가지말라고 하셨던 기억이 떠올라 발걸음을 돌렸다. 

오름 정상부나 능선의 일부에는 다른 오름처럼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스코리어 때문인데 제주에서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화산송이로 불리고 있다. 송이는 분석이라고도 하며 현무암질 마그마의 폭발성 분출에서 발생하는 용암덩어리이다. 나무와 숲이 빼곡한 오름과 다른 모습은 정상에서 최고의 조망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아름다움, 그 이면에 감춰진 아픈 역사

다랑쉬오름은 빼어난 자연 경관 속내에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1948년 다랑쉬오름 20여 가구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4ㆍ3사건 와중에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됐다. 이때 마을사람 몇몇이 다랑쉬오름 주변의 굴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는데, 군ㆍ경 토벌대에게 발각돼 굴속에서 몰살을 당했다고 한다. 군ㆍ경 토벌대는 당시 굴 주변에 떨어진 인분을 보고 피난민을 발견해냈고, 피난민들에게 굴에서 나오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따르지 않자 굴 양쪽 입구에 동시에 불을 지펴 연기를 안으로 들어가게 해 피난민들을 모두 질식사시켜버렸다. 1992년, 44년 만에 이들의 주검이 고스란히 발견됐는데, 발굴 당시 굴 속 바닥에는 시신 11구가 누워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어린이부터 아주머니를 포함한 민간인들이었다. 굴 속에 갇혀 있던 시신은 발굴 직후 당국에 의해 성급히 화장돼 바다에 뿌려졌으며, 현재 다랑쉬굴의 입구는 굳게 폐쇄됐다. 옛 마을의 위치를 알리는 작은 나무 비석이 다랑쉬 오름을 뒤로하고 초라하게 서 있는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렇게 다랑쉬 굴은 4·3 참극의 상징이 됐다.


◇오름 기획을 마치며

이번 기획을 통해 오름은 단순 언덕, 산으로서의 존재가 아닌 여러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제주의 중요한 자연유산인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한편으로는 각광받지 못 하고 관리에 소홀해 방치됐다시피한 오름들 또한 많았다.

서부, 중산간, 동부를 대표하는 오름들을 다니며 오름의 가치를 지키고, 오름의 매력을 널리 알리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오름의 형태와 역사, 그리고 미래를 보고 왔다.

현재의 오름을 잘 보존하고 활용한다면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정부, 지자체, 도민, 관광객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