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길, 다른 삶을 묻는다    < 3 > 유서영 제주청년네트워크 

유서영 제주청년네트워크 대표가 인터뷰 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 하나의 직업으로만 지내는 것도 아닌데다 그 직업도 한 마디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서영(31)제주청년네트워크 대표도 그렇다. 중어중문학 08학번으로, 대학을 졸업하면서 전공 따라 취직했다. 곧이어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우연한 계기로 진로를 틀었다. 창업 분야에 발을 디디면서 기획 일을 하고,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공연을 만들어 선보이고, 기업가정신을 뜻하는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의 줄임말인 ‘앙트십’ 교육가로도 활동했다. 

청년이 돼 사회로 나오면서 그는 기존 제도의 빈틈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겪게 되는 제약이면서 당대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또래 청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제주청년네트워크를 만들고 청년활동가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스스로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 개인의 목소리가 사회의 의견이 될 수 있도록 창구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정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분투했던 그는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최근엔 ‘임팩트 투자’라는 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 달라.

사회문제를 기업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소셜 벤처’에 투자하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임팩트 투자사인 SOPOONG에 다니고 있다. ‘Social Power of Network Group’의 줄임말이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지낸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는데, 진로를 틀었다. 무슨 일을 해왔나.

중국어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선택했던 게 전부여서 특별히 진로라고 여겨본 적은 없다. 수능 성적에 맞춰서 진학했다. 평소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아주 흥미롭진 않더라도 못하진 않았다. 유학도 다녀왔고 전공을 살리려고 관련 직업을 갖기도 했다. 중국어 학원강사, 중국어 전문 의료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일을 할 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언어를 더 공부해보자고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의 남편이지만 당시 남자친구가 창업을 했는데, 몇 가지 프로젝트의 매니저를 하면서 공동창업자로  기획 일을 맡게 됐다. 그 전에는 그저 ‘전공을 살리자’가 신념이었다. 전공을 살리지 않으면 대학 4년, 유학 1년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지나고 보니 지금은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때의 경험이 쓸데없는 건 아닌 것 같다. 두 가지 교훈이 있다. 다른 언어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졌고, 유학 시절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접점을 갖게 되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면서 제주지역의 청년활동 흐름 안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청년활동에 발을 들인 것은 ‘바람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다. 무대가 필요한 청년 뮤지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공연문화조직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청년들이 가능성에 비해서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것을 이야기할 창구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것이 문화예술활동에 국한된 게 아니라 주거와 일자리, 아주 깊게는 자아를 찾는 활동까지 이어졌을 때 청년들이 많이 방황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제도적으로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데도,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청년정책 이야기를 주변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하게 됐다. 그 단체가 제주청년네트워크이다. 2017년에는 키워드별로 정책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2018년도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후보 정책을 제안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나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정책에 반영이 될 수 있을까 창구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정책제안이 되기도 하고 조직이 결성되기도 하고 방송사 토론회의 패널로 나가는 방식으로도 이어지기도 하고 결국에는 토론회를 직접 개최하기도 했다.

▶많은 일을 해왔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기획 세 가지를 소개해 달라.

‘응답하라 2030’ 제주에 있는 20, 30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아보자고 시작한 행사이다. 비슷한 필요를 느끼는 청년들이 모여서 공동의 기획을 하는 첫 번째 경험이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하는 활동가 동지들이 있다는 걸 서로 인지하는 시작이었다. 이걸 계기로 다른 프로젝트들이 많이 진행됐다. 제주청년네트워크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년’이라는 세대담론에 있어서 대표성을 자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다수의 청년과 기획자로, 활동가인 청년들도 응답했다. 좋은 동료를 많이 만났다.

마라톤캠프를 2015년 11월, 2016년 4월ㆍ8월, 2018년 12월 4회 치렀고, 2017년, 2018년, 2019년 제주청년문제해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해커톤(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로 48시간 동안 기획자와 개발자가 결과를 도출해내는 행사)의 방식을 빌려서 24시간 동안 제주의 청년들이 자신이 느끼는 사회문제를 정의해 보고, 문제해결과정을 끝까지 파고 들어서 실마리를 만들어보는 무박 2일 캠프이다. 동료들과 직접 만들어서 더욱 애착이 간다. 청년 세대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걸 모를 때도 많다. 창업을 독려하지만 실제로 어떤 아이템으로 해야 하는지 진짜 문제가 끝까지 파보는 경험을 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 나도 그렇고 주변에 기획자들도 그렇고 우리가 못한 경험을 기획으로 녹여보자고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예산 한 푼 없이 오로지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기업과 중간지원조직과 대학교가 함께하면서 행사 규모가 커졌다. 올해로 3년차까지 무사히 치렀고 점점 더 안착되어가는 프로젝트이다. 

2018년에 진행했던 미디어페스티벌 ‘스스스’도 기억에 남는다. 다른 길을 걸어가는 89년생 또래의 친구들 셋이서 시작한 기획이다. 나는 문화기획자이자 창업가로, 한 친구는 문화예술지원조직의 공무원으로, 한 친구는 아티스트로 자기의 길을 걷는 친구들이 작당모의해서 만들었다. 이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선흘리 도깨비공원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장르와 ‘제주’의 공간과 전시를 엮어서 풀어냈다. 제주에서 아주 비주류의 문화를 보여줬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궁금했는데 관심을 받으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동시대를 경험한 친구들이 비주류라고 느끼는 것을 신나게, 흥이 나게 했을 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다. 예전에는 내게 주어진 일을 완결성 있게 잘하는 게 목표였다. 최근에는 그건 기본이고, ‘어떻게 하면 소모되지 않고 일을 해낼 수 있는가’에 꽂혀 있다. 기획 일을 하다 보면 정해진 날짜에 수행하면 더 이상 돌아보지 않는 일도 더러 생기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전 프로젝트와 다음 프로젝트가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전의 경험이 다음 프로젝트에도 좋은 양분이 될 수 있게 피드백 회의를 한다거나 각각의 프로젝트가 연결된 선으로 작용할 수 있게 구조를 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가치라고 하면 ‘이 프로젝트가 나를 성장시키는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내가 기획했지만 누구든 이어받을 수 있도록 ‘모듈화’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고 느낀다.

▶앞으로의 계획, 혹은 하고 싶은 것은?

‘나’를 한마디로 소개하라고 하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경험을 쌓고 쟁이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조합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최근에 하고 있는 일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사실은 수익성이나 지속가능성에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임팩트 투자’라는 영역에서 가능성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지금 속한 조직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지속가능성을 갖고 임팩트를 커지게 만드는 방법이 제주에서도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 했던 일들은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일이었다면, 서울에서는 더 나아가 이득을 같이 키우는 것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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