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한민국 군대ㆍ경찰ㆍ우익청년단의 책임 밝혀야”
“교육, 문화계획 설정한 미래지향적 교육 가치 발굴”
“4ㆍ3에 단순 역사 경험 아닌 보편적 의미 부여해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1층 책마루에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도면회 대전대학교 교수, 고동환 카이스트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 학장, 박찬식 전 제주4·3연구소 소장, 조한준 창현고등학교 교사, 송시우 제주고등학교 교사.)

한국 사회에서 ‘제주 4ㆍ3’이란 명칭이 통용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 단어를 언급하면 국가 권력의 탄압을 받았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에야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했다.

2000년대가 넘어서 중ㆍ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사건의 진상이 일부 서술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제주 4ㆍ3은 항상 ‘폭동’으로 묘사됐다. 1997년까지도 교육부 편찬의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무장폭동”으로 서술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진상조사와 희생자 신고가 이뤄졌다. 2002년부터는 단독선거 반대 투쟁의 의미를 강조하는 서술로 바뀌었다. 무고한 주민 희생과 진상 규명, 명예회복을 다루는 내용도 추가됐다. 또한 명칭도 중립적 용어인 ‘제주 4ㆍ3 사건’으로 명명돼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10월 12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주관 ‘4ㆍ3 평화ㆍ인권교육 발전 방안 포럼’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비상교육 ‘한국사’ 대표 집필자인 도면회 대전대학교 교수가 ‘한국사 교과서와 제주 4ㆍ3교육의 발전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올해 개정된 중ㆍ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제주 4ㆍ3’이 어떻게 서술됐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간의 변화를 돌이켜보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교과서를 서술할 것인지를 모색했다. 또한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 ‘4ㆍ3 기억의 세대전승 및 교육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4ㆍ3 직접 체험 세대가 갈수록 소멸하는 가운데 현 세대를 대상으로 기억 계승을 위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시대 따라 달리 서술된 한국사 교과서 속 제주 4ㆍ3

현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에는 ‘8ㆍ15 광복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이란 소주제에 ‘제주 4ㆍ3 사건’이 학습요소로 포함돼 있다. 또한 8종 교과서 모두 평균 1쪽 이상의 분량으로 제주 4ㆍ3을 서술하고 있다. 평균 4분의 1쪽에 불과했던 이전 교과서들과 비교하면 큰 비중을 둬 다루고 있다.

다만 4ㆍ3사건의 결과로 발생한 ‘희생자’수와 제주도 인구상의 비중을 적시한 교과서는 4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4종은 ‘수많은 주민’ 또는 ‘민간인’ 정도로 표현했다. 

피학살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나 텍스트도 전반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진상 조사와 대통령의 공식적 사과, 평화공원 조성, 국가기념일 지정 등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비상교육 ‘한국사’ 대표 집필자이기도 한 도면회 대전대학교 교수는 “과거에 비해 이러한 서술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민주화 운동 속에 성장한 한국현대사 연구자들과 그 성과를 직간접으로 받아들인 역사교사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주4ㆍ3사건’이란 명칭이 그 성격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4월 3일은 자유를 위한 무장봉기라 생각하며 1980년 광주 항쟁과 유사한 성격을 띈다”며 “4ㆍ3 역시 ‘제주 항쟁’ 또는 ‘4

ㆍ3항쟁’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제주4ㆍ3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에 쓰인 ‘소요사태’, ‘무력충돌’, ‘진압과정’ 등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단어는 무장대와 토벌대를 대등한 무장을 갖춘 관념에서 나오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1948년 후반으로 갈수록 대등한 무력 수준의 충돌이라기보다는 압도적인 무력에 의한 노약자, 여성 등에 대한 학살이 이뤄졌다”며 “조사 결과에 적합하게 용어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교과서에서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수립 반대를 들고 있지만 사실은 경찰과 우익 단체의 탄압 문제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며 “자유를 위해 봉기한 측면은 교과서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제주도민이 겪었을 일상적 폭력 상황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봉기 원인을 당시 제주도민의 실제 상황에 직면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실제로 수많은 피해가 발생한 시점은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며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7종이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 무차별 폭력과 학살에 대한 서술이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제주4ㆍ3특별법 개정안 통과와 진상조사 및 국가 책임 명료화를 통해 역사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 교과서 속 제주4ㆍ3 내용이 한 단계 더 진전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멸 중인 직접 세대, 학교 교육 통해 기억 계승 이어져야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4ㆍ3 진상규명이 3세대를 건너 100년 사업이 되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며 ‘제주4ㆍ3 기억의 세대 계승 및 교육’ 설문조사를 실시한 배경을 밝혔다. 

그는 “4ㆍ3 직접 경험 세대인 1세대와 간접 경험 세대인 2세대는 현재 70년이 경과하며 소멸하고 있다”며 “현세대가 미래 담론을 주도할 텐데 제주 4ㆍ3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는 제주도내 고등학교 1학년 재학생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제주도내 30개교 6,486명의 재학생 중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해 학급당 약 25명 내외의 학생들이 조사에 응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84.6%가 제주 4ㆍ3을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67.1%는 초등학교 시절에 4ㆍ3을 인지했다고 답했다.

4ㆍ3 인지 경로는 학교가 80.3%를 차지했다. 대중매체나 인터넷 매체는 5.7%로 예상외로 미미했다. 집안의 제사의례를 수행하며 인지한 경우는 2.6%에 불과했다.

현혜경 책임연구원은 “희생자 및 유족이 있는 경우에 인지계기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유무와 상관없이 학교 교육의 영향력이 확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4ㆍ3관련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학교교육 이수횟수는 6~10회 정도가 전체 42%를 차지했다. 즉 1년 평균 1.4회 정도 교육 실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4ㆍ3에 대한 부모의 관심도는 보통이 48%로 가장 높았다.

그는 “이들 부모세대들이 4ㆍ3사건의 3세대로, 공적 기억의 첫 계승세대였다. 그들도 문화적 재연 매체에 의해 4ㆍ3에 대한 기억 전승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육이수 횟수가 많다고 해서 잘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적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약 6~10회 정도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이 훨씬 더 4ㆍ3의 인지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4ㆍ3의 전승에 있어 그간 몇 년간의 학교 교육이 큰 성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것이 학생들에게 내면화돼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는 미미하다.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 교육과 문화계획을 설정한 미래지향적인 교육 가치 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고동환 카이스트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 학장은 “1ㆍ2ㆍ3세대까지는 4ㆍ3이 금기어였다. 겉으로 드러내 말할 수조차 없었다”며 “그럼에도 부모세대로부터의 전승이 이뤄졌으나 4ㆍ5세대는 자연스러운 전승이 단절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제주도의 정체성, 토박이성이 희석되고 있다. 제주도민의 독특한 역사 경험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의미를 부각시켜야 4ㆍ3의 전승이 제대로 정착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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