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대몽 항전 벌인 삼별초 상륙 막기 위해 축조
조선시대, 이양선 출현 후 돌담 성 확대ㆍ복구에 나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 환해장성은 2.12㎞로 현재 남아 있는 장성 중 가장 길며, 온평리 하동 해안에서 신산리 경계까지 이어져 있다.

제주섬과 바다. 그 경계에는 침입과 방어의 역사가 있다. 
외부 세력은 바다를 건너와 양민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다.
그래서 선조들은 바다를 빙 둘러가며 돌담 성을 쌓았다.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걸쳐 해안선을 따라 600년 동안 성을 구축했다. 이름 하여 환해장성(環海長城)이다.

옛 문헌에 ‘탐라의 만리장성’으로 기록된 환해장성은 3백리(120㎞)에 이르렀다.
제주도 해안선 길이가 258㎞인 것을 감안하면, 섬 둘레의 절반 정도는 환해장성을 쌓은 셈이다.
환해장성 축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국 수호를 위해 대몽 항쟁을 벌인 삼별초를 막기 위해 시작됐다.

1270년(원종 11) 전남 진도 용장성에서 대몽 항전을 벌이던 삼별초가 제주에 입성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한 관군이 제주에 들어와 돌담성을 쌓았다.

이원진의 탐라지에 따르면 고려 왕은 고여림 장군과 영암부사 김수에게 군사 1000명을 달려 보내 제주에 장성을 구축했다고 기록했다. 또 다른 문헌에는 7200명이 축성에 동원됐다고 적었다.

역사학자 강창언씨는 “환해장성 축성을 위해 하루에 군사 1000명과 도민 6000명 내외가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제주 인구가 1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다수의 민초들을 동원돼 돌을 나르고 담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삼별초는 관군을 몰아내고 제주 입성에 성공했다. 제주를 점령한 삼별초는 여ㆍ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
이상한 모양의 배라는 뜻인 이양선(異樣船)의 출현은 조선 후기에 환해장성을 확대ㆍ복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845년(현종 11), 영국 군함 사마랑(Samarang)호는 우도에 도착, 이 섬을 기지로 삼아 40일 동안 제주에 머물렀다. 영국인들은 우도에 흰색 깃발을 꽂고, 수심을 측정했고 돌을 쌓아서 회(灰ㆍ석회가루)를 칠해 방위를 표시했다.

현종실록에는 ‘영국인들은 때때로 대포를 쏘아서 산악이 진동했다. 작은 배를 타고 줄자로 섬을 측량했다. 매번 100보마다 돌을 쌓고 회를 칠하고는 그 속에 쇠자루(鐵釘)를 끼웠다. 이에 제주목사 권직이 크게 놀라 마병(馬兵)과 총수(銃手)를 동원해 대비했다. 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해 환해장성을 크게 수축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종실록 이후 환해장성을 축조한 기록이 없는 것을 감안, 1845년 권직 목사가 백성들을 동원해 쌓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자취로 추정된다.

제주 민초들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을 따라 성을 쌓고 보수를 했다. 무너지면 쌓고, 내려앉으면 쌓아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장장 600년에 걸친 대역사였다.

길고 긴 환해장성은 제주도민의 피땀으로 축성했다. 그래서 돌멩이 하나하나에 제주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길이는 140~620m로 비교적 짧지만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 환해장성은 2.12㎞로 가장 길다.
환해장성은 현무암의 풍화작용으로 둥글게 된 일명 ‘몽돌’로 축성됐다. 굴곡진 곳에는 잔돌로 메운 후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담을 쌓아올렸다.

비탈 지형인 해안에 성을 쌓으면 성안이 자연스럽게 성 밖보다 높아져 방어에 유리했다. 성의 높이는 2~4m 이른다.
돌 하나하나에 제주의 역사가 스며있던 방어유적은 대부분 사라졌다. 1970년대 일주도로 181㎞ 전 구간 포장과 맞물려 환해장성은 도로 기반용 잡석으로 깔렸다.

1990년대에는 해안도로 개발 붐이 일면서 제주섬의 울타리는 급격히 무너졌다.
현재 남아 있는 환해장성 유적은 제주시 화북 곤흘동(140m) 화북 별도(620m), 삼양(280m), 애월(362m), 북촌(263m), 동복(150m), 행원(310m), 한동(290m) 등 8곳, 서귀포시는 온평(2120m), 신산(600m) 등 2곳이다.
이를 모두 합쳐도 총 길이는 5135m에 불과하다. 1998년 제주특별자치도는 환해장성을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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