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섭

영어교육과

영미시전공 교육학박사

방황하는 시대와 자아상의 치유

‘방황하는 화란인’이란 항구에 정박하지 못하고 대양을 영원히 항해해야 하는 저주에 걸린 유령선 전설이다. 이 전설은 17세기의 선원들 사이의 문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해온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agner)의 오페라에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nder)이 있다. 예전에는 ‘방황하는 화란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화란’은 홀랜드(네덜란드)의 한자 음역어이다. 15~16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럽에 널리 알려진 전설의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이라는 영어 명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fliegende을 flying으로 직역해서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네덜란드인 판 슈트라센 선장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희망봉(The Cape)을 통과하던 중 험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고집하다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그의 고집에 대한 벌로 슈트라센 선장과 선원들은 영원히 희망봉을 헤매야 하는 벌을 받게 된다. 

17, 18세기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 무역을 석권한 네덜란드에는 전 세계의 부가 밀려들었다. 해양 국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것이 ‘방황하는 화란인’의 전설이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채 바다 위를 떠도는 이 유령선은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불안감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했을까? 원거리 무역이 가져온 경제력을 토대로 유럽 사회는 점차 근대로 나아가게 된다.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고, 불평등한 신분 제도와 불합리한 사회제도는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1789)으로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삶은 점점 분화되고 빠르게 신화의 세계를 벗어났다. 괴테는 <파우스트 Faust>(1806)에서 “노력하는 한 길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자발적인 현대인에게 세상은 살수록 고독하고 힘들게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그 시대의 ‘방황’하는 젊은이 자아상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The Sorrows of Young Werther>(1774)을 낳기도 했다. ‘방황’, ‘탈출’, ‘구원’ 이 세 가지 요소는 낭만주의(Romanticism)라는 시대정신의 형태소이기도 하다. 바그너의 유령선은 오늘날 현실 세계에서도 다양하게 그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전지구적 펜데믹 확산

무엇이 세상을 두렵게 하는가? COVID-19 Pandemic Era의 우리는 자아상의 불안을 충분히 눈치 채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는 비대면 사회의 도래와 가속, 디지털 사회의 가속화, 가족공동체와 다음 세대로의 위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뉴 노멀(New Nomal)시대에 달라진 세계 패러다임의 방향과 그 패러다임에 따른 구체적인 이슈들 즉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려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와 비대면(untact)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사회적 조건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생겨난 성찰적(reflection) 환경은 대학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비대면 대체로 커뮤니케이션 역량의 강화, 건물 중심의 강의에서 사람 중심의 강의로의 변화, 모이는 학교와 흩어지는 학교의 균형, 교수에게 의존하는 강의에서 학생 스스로 책임지는 강의로의 변화, 집단 중심의 학교에서 한 개인에게 집중하는 질적인 학교로의 변화, 내적 역동성과 자아상의 본질을 회복하는 생활의 균형들이다.

불안한 시기에도 자아상(self-image)의 변화와 성장은 일어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책과 가까이할 시간이 생겨나기도 한다. 문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깊은 억압을 드러내게 하는데(R. S. Parker, 1969 : 160), 이것은 여러 가지 감정을 드러내어 의미의 형상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정신 분석에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Nicholas Mazza, 김현희 역, 2005 : 33). 

◇긍정심리학자, 자아상은 정신건강의 척도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자아상, 즉 자존감이 정신건강의 척도가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자아상은 모든 어린이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판가름하는 받침대(mainspring)이다. 자존감은 사람이 선택하는 친구의 종류, 그의 대인관계,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가, 얼마나 생산적인 삶을 사는가, 지도자가 될 것인가, 추종자가 될 것인가, 적성과 능력을 얼마나 발휘하는가, 즉 생활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Charles Swindoll)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확고한 자아상을 정립하는 것이야말로 변치 않는 우정과 인생의 반려자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자아상은 우리의 중심 주제이다. 우리는 어쩌면 낮은 자존감, 즉 상처받은 자아상 때문에 젊은 시절 기를 펴지 못하고 위축된 가운데 보냈던 공통된 기억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정동섭)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해몽에 따라 그 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자아상이란 것도 그런 것이다.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자기의 이미지에 따라 자아상은 달라진다. 그런데 자아상에는 역설적(Paradoxical)인 면이 있다. 소위 명문대를 나오고 사회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삶의 조건을 누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아상이 건강한 것 같지만, 오히려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찌들어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반면 외적 현실은 가난하고 볼품없는데 내면은 왕 같은 사람이 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얼까? 자아상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뿌리가 깊다. 자아상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며, 따라서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바로 건강한 자아상일 것이다. 유년시절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한 사람은 행복한 성인으로 성장한다. 매사에 자신감이 있고 삶을 긍정하며, 좌절에 쓰러지지 않고 창의적이며, 타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 사람과 관계하는 사람은 편안하다. 그런 사람이 배우자라면 결혼생활이 만족스럽다. 그런 사람이 하는 일은 잘될 수밖에 없다. “잠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될 거야”라는 자기 긍정이 부정적 현실을 압도한다. 

◇건강한 자존감 회복이 곧 행복

우리는 평생 자아상 혹은 자기존중감과 자존감의 문제로 고민할 수 있다. 내게 초기 20년은 너무 어둡고 불안한 자아상을 갖고 살았고 20대 이후의 삶은 그 어둡고 상처받은 자아가 서서히 회복되고 밝아지고 변화하는 삶을 살았다. 이처럼 자아상의 변화는 운명의 변화와 같다. 자아상이라는 말 속에는 자기존중감, 자기효능감, 자기정체성이라는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것을 갖는 희소가치를 얻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성공이란 나와 남들이 다 가져야 할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Resilience)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하다. 그 행복 속에 이미 성공이 들어 있다. 자아상은 세상을 변화, 변혁시킬 수 있는 강력한 요소다.

때로 우리는 자아상이 심하게 왜곡되었거나 부정적인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물론 그들의 그런 상처 뒤에는 대부분 상처를 준 부모와 열악한 유년 시절의 환경이 있었다. 시치유 전문가로서 늘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한 자아상으로 살아가게 도울 수 있을까 이다. 최근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의 말처럼 최고 말고 최중이 되면 그만 이겠다. 솔직하고 당당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생긴게 곧 운명이다”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주체이다. 오늘 본질의 위기가 아닌 틀(frame)의 위기의 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가치 즉 자아상을 재발견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번 밖에 못 사는 이번 생의 삶을 부정과 미움과 한숨과 절망이 아니라 긍정과 기쁨과 감사와 편안함으로 자신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설레임이 쏟아지는 신성한 떡갈나무 아래서 세상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860년대에 그려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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