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가작

노을이 지는 집

                                                 신혜원(해양의생명과학부 3)

 일러스트 고재원 (언론홍보학과 3)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혜 빌라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 생각났다.

인적 드문 별채들 사이를 지난다. 마당에 개들 짖는다. 메마른 포도원을 지나 걸을 때마다 햇빛 내리는 거목들, 그루 수 센다. 잎사귀 스치는 소리, 훈풍이 미무하여 귓가를 간질인다.

고개를 든다. 언덕 내려가는 길목에서 저 멀리, 파란 바다 보인다. 손가락으로 가늠해보다 문득, 수평선 높이가 어느 날 구의동 현관의 문턱과 꼭 같은 것을 느낀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겨우 가늠할 수 있던, 두 시선의 낙차가 엇비슷하게 들어맞는다. 

밀려온다. 짠 내음 삼키고 만다. 

바다는 바람의 집이다. 어렸을 때 엄마와 어떤 해안가를 걸으며,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나중에 그 말이 다시금 떠올랐을 때, 나는 마침 서울집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남의 집에 정박한 것과 다름없다. 

잠결에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니 눈꺼풀이 절로 가벼워졌다. 생수병을 들고 마른 입안을 축였다. 입안 가득 물을 머금고 침대 위 암막 블라인드를 제쳤다. 모슬포항보다 한라산 자락에 더 가까운 집에서, 나의 방은 바다와 제일 먼 최하층에 위치했다. 매일 창문 너머 보이는 파란색들의 합치……. 언제나 그랬다. 바다를 보고 싶어도 바다만 볼 수는 없었다. 

어버이날에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샛노란 프리지아를 온라인으로 예약해두었는데, 발송이 지연되어 애매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가는 길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매너 모드로 전환했다. 물류센터 입구에서 대기하던 거대한 화물트럭들 사이를 지나던 중, 어디선가 피리릭- 하고 새소리가 들렸다. 호루라기 신호인가 싶어 천장을 보니 새들 몇 마리가 철제 구조물 사이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위로 한가로운 메아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녹슨 레일들 뒤로 리첸 언니가 인사를 했다. 일일 근무표에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한 뒤 벌써 준비를 마친 언니 옆으로 다가갔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서둘러 목장갑을 꼈다. 언니는 어눌한 말투로 오늘도 파이팅, 하며 탄산수를 건넸다. 아르바이트는 보통 이른 오전에 시작해서 해 질 녘 즈음 종료되었다. 센터 안에서의 일은 단순했다. 당일 배송할 물품들을 고르고, 토트에 담아 모두 적재용 레일 위로 올리면 되었다. 익숙하게 토트를 펴서 언니 옆에 임의로 자리를 마련했다. 리첸 언니와 말을 튼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며칠 전 구석에 앉아 토익 문제집을 뒤적이는데, 우연히 옆을 지나던 리첸 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리첸 언니는 제주시 내 한중커뮤니티를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유학생이라고 했다. 리첸 언니는 평일 저녁마다 집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오전 수화물 분류를 끝내고 잠시 쉬는데 언니가 탄산수를 들고 다가왔다.

“맞다. 그 카페, 어젯밤부터 칵테일을 팔기 시작해.” 

“거기 말이에요? 언니 공부는요?”

“아이. 난 안 마시지. 난 똑같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그래도 괜찮대요?”

언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어제는 드디어 사장님이 전문 바텐더도 고용한 것 같다며 동네의 분위기 좋은 스터디카페가 클래식풍의 펍으로 변질된 것이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가구, 조명, 그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언니는 눈치가 보여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언니의 말에 동감했다. 그건 마치 야생에서 동등한 서열을 가진 육식동물들이 한 집단에 머무를 수 없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언니의 경우, 그 영역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언니는 저항할 힘도 없이 낮으로 밀렸을 것이다. 자연히 해가 지면, 낮 손님은 떠나야만 했다.

신호음이 울렸다. 분류장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에 일어났다. “정원.” 언니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이내 몸을 돌려 나를 불렀다. “나중에 만나서 같이 공부할래?” 

카페 얘기를 시작할 때부터 언니의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리첸 언니가 좋았다. 우리 둘 다 바다 건너 타지에서 독립했고, 센터 안에서 나이도 제일 비슷했기 때문에 대화는 좀 서툴러도 잘 맞는 구석이 많았다. 이참에 다른 나라 언어도 좀 배워볼까 싶기도 했다. ‘좋아요.’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 나는 가슴속의 메스꺼움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입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헛구역질이 밀려왔다. 리첸 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다른 구역에서 급하게 언니를 부르는 소리에 하는 수없이 걸음을 옮겼다. 언니의 떠나는 모습 사이로 레일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그만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지 그러냐.”

전세 계약이 거의 만료되던 시점에 진명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제주시 삼양동에서 작은 스노클링 장비 대여점을 운영하는 진명 선배는 한동안 같은 동네에 살던 나를 걱정이라도 하듯 넌지시 물어왔다. 선배는 나를 반항심에 집을 나온 가출청소년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벌써 이사 갈 집은 구했는걸요. 이제 여름이니까 선배 일도 도와야 하고…….”

“아줌마랑 화해할 때도 됐잖아.” 

내가 엄마를 불편해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선배의 발언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진명 선배는 몇 년 동안 여기저기 떠도는 내 생활을 두고 예상한 말에 불과했지만, 나는 왠지 사실을 토로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엄마랑은 거의 매일 전화해요. 저도 이제 성인이고. 홀로서기 해야죠.”

“너 형제도 없다며. 나중에 후회 말고 얼굴이나 자주 보여드려. 그게 제일 효도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선배는 막차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밤, 죽은 동생이 물고기가 되어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침대 밑에 오래된 어항이 있었다. 표면에 짙은 이끼가 껴 잘 보이지 않았다. 물속엔 엄청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대체로 그것들은 헤엄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둥둥 떠 있기만 했다. 동생은 커다란 열대어였다. 그 애는 눈이 먼 심해의 아귀처럼 맨 밑바닥에 침잠되어 있었다. 하루는 외출하기 전 어항을 들여다보는데 그 애가 보이지 않았다. 이내 부유하던 존재들이 희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굵은 물살들이 울컥대며 어항 안에서 정신없이 얽혔다. 거대한 부피들 사이로,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한참이나 그 애를 찾았다. 안 보이는 곳에 있겠지. 있겠지. 그러나 그 애는 어디에도 없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마가 방문 앞에 서서 말했다. 오래됐잖아. 죽어서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혔을 거야, 하는 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속에서 무언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 입을 틀어막았다. 식은땀에 절은 베개 뒤로, 동이 터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느지막이 센터를 나왔다. 결국 언니에게 오늘이 마지막이었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2차선 도로 위로 거대한 화물트럭들이 연이어 지나갔다. 트럭들이 다 지나간 후에야 구석 자리 풀숲에서 나와 차선 위를 걸었다. 센터 주변에 보도가 없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까지는 달리는 차를 피해 도로변을 걸어야 했다. 토천을 건널 무렵엔 산악자전거 몇 대가 옆을 스쳐 지나기도 했다. 온몸에 씐 먼지를 탁탁 털어내다가 언덕 너머로 지는 해를 구경하는 느낌이 썩 괜찮았다. 이 길도 이제는 마지막이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도로 맞은편의 과일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유성이 자국을 남긴 채 드러나 있는 모양으로 무른 과일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아쉬운 마음에 길을 건너서 사과 여섯 알을 샀다. 린넨 재킷 주머니 안에서 구겨진 만 원을 꺼냈다. 인색한 표정으로 조수석에서 잔돈을 거스르는 아저씨를 보면서 순간 아차 싶었다. 사과라니. 고작 이런 날을 기념하려고 비싼 사과를 사는 일은 그야말로 치기 어린 객기와 다름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돈을 받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다시 하얀 궤도 위에 섰다.

무거운 검은 봉지를 빙빙 돌리며 선을 밟았다. 균형이 맞지 않는지, 몸이 자꾸만 흔들렸다. 이러다 봉지에 지나가는 차에라도 맞으면, 생각하는 중에 바지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엄마’였다. 

어디야? 지금 끝난 거야? 늦었네.

집에 가는 길이에요.

밥은? 

집에 가서 먹어야지. 

뭐 반찬 보내줄까? 엄마가 이번에 새로 너 좋아하는 오이소박이 담갔는데…….

됐어요. 아직 남았어요. 

그래.

휴대폰 속 시간으론 벌써 여섯 시가 넘었다. 아직 해가 남았는데. 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집으로 직행하는 버스는 이미 가고, 남은 노선들은 모두 다른 마을까지 돌아서 가는 것들뿐이었다. 발가락을 접었다 폈다가, 운동화 뒤창을 바닥에 쿡쿡 찍다가 문득, 노을이 스러지는 모양에 이끌려 언덕 너머에서 달려오는 맞은편 버스에 눈길이 갔다. 오늘이 마지막이었는데. 나는 마치 또 다른 중력에 이끌리듯 사과를 끌어안고 맞은편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

진명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 

내가 보낸 새집 주소를 받고 이틀 만에 온 답장이었다. 선배는 내가 이번엔 하다못해 절에 있다고 생각했다. 선배 말인즉, 효운사에서 템플스테이 용도로 사용하던 작은 별채가 하나 있었는데, 얼마 전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서 거기 빈방을 원룸으로 내어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 그 산자락 주변에 월세라고는 단지 그것뿐이라고 했다. 그럴 듯도 한 게, 지도 앱에서는 그 집이 뜨지 않았다. 그 집은 다른 집이었다. 멋모르는 내가 설마 타지에서 사기라도 당한 건 아닌지 싶었던 선배는 수일 내에 찾아가서 직접 확인해야겠다고도 했다. 대리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선배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뒷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었다. 젖은 풀잎 냄새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일은 이 마을에 이사 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상관없었다. 어차피 집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내일 할 일도 없으니 당장 오늘 밤 아무 길가에서 죽어도 좋았다.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창문 너머로 지나온 길을 복기하다가 과일 트럭을 스칠 때는 기분이 저릿했다. 시간이 반대로 돌아가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창밖으로 팔을 뻗었다. 손가락에 감긴 바람이 차갑고 포근했다. 절로 눈이 감겼다. 오후의 선선한 햇살이 눈꺼풀에 닿았다.

동생을 처음 만났던 날이 설핏 기억난다.

동생과는 일곱 살 터울이었다.

“그중에서 걔가 제일 예뻤지.”

“응.”

“오늘부터 정원이 동생이네.”

“맞아.”

“아직 아기야. 엄마가 낮에 회사에 있는 동안은 정원이가 유치원 다녀와서 동생 돌봐줘야 한다?”

“엄마, 내가 안아봐도 돼?”

“아직 기다려. 집에 가서 열어봐.”

차가 방지턱에 들어설 때마다 종이상자 틈에서 강렬한 반짝임이 일었다. 나는 동생이 놀라지 않도록 커다란 상자를 최대한 옆구리에 끼워 고정하려고 애썼다. 창문 너머로 작아지는 남산타워의 조명과 밤인데도 환하게 빛나는 상가 불빛들이 동생의 눈으로부터 반사되어 내 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운전하느라 보지 않는 틈을 타, 상자에서 동생을 꺼냈다. 꼭 작은 전구를 쥔 느낌이었다. 검은 눈동자와 납작한 코끝이 나를 인식하듯 움찔거렸다. 동생은 여섯 살 내 품에 완전히 안길 정도로 작고 가벼웠다. 하얀 털이 부드럽게 살결을 스치며 내 무릎으로 걸어와 앉을 때, 아마 일생에서 이만큼 감격할 일은 다시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동생이 우리 집에 온 건 기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엄마는 의류 회사에 다시 복직했다. 엄마는 원래 다니던 회사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주말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 여름 우리는 엄마의 회사와 가까운 구의동으로 이사해야 했다. 아차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골목 가에 있던 그 주택은 보기 드문 빨간 벽돌집이었다. 하필 우리 집의 창문 모서리 옆으로 담쟁이가 길게 자라서 멀리서 보면 우리 집에서부터 골목의 여름이 시작되는 듯했다. 동생은 거실 한쪽의 커다란 창문 앞으로 가서, 그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후가 되면 동생은 항상 창가 밑,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덕분에 다음 해, 초등학교 운동장 둘레에 핀 벚꽃잎이 다 지기도 전에, 동생은 여름에 완전히 감염되고 말았다. 온몸에 정체불명의 곰팡이가 피어나고, 오른쪽 눈은 햇살에 타들어 간 듯 바싹 말라 녹색의 곱이 가득 차올랐다. 털이 듬성듬성 빠진 외양이 마치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만화영화 속 괴물과 거의 흡사했다. 좀비 같기도 했다. 엄마는 동생을 볼 때마다 징그럽다며 손을 올렸다. 어쩌다가 나는 아홉 살, 괴물의 형제로 자라는 중이었다.

“학교 끝나면 바로 셔틀 타고 학원 가면 돼.”

“그냥 집에 있을래.”

“옆집 사는 진희 언니 알지? 그 집 아줌마 말이 지금 네 나이에 예체능 시작하기도 늦은 거랬어. 기본적인 거, 논술이랑 영어랑 또…”

서둘러 차 키를 가지고 신발장 앞에 선 엄마가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대. 잘 다녀오래.”

다음 날부터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검은 봉고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교문 철창에 기대어 사람들이 지나는 횡단보도를 바라보았다. 건너편 신호등이 깜박거렸다. 학원 봉고차가 골목 입구에서 경적을 울리기 전까지 나는 그 빈집 창가 밑에 있을 그 애를 생각했다.

야간교습학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문턱에 웅크린 동생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우주에 떠도는 별이라도 되는 양 빈집의 적막한 어둠을 흡수하며 그 애는 빠르게 자랐다. ‘내일이면 폭발하지 않을까.’ 신발주머니를 아무렇게 던져두고 동생을 안아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어느새 동생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직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그 애를 안을 수 없었다. 동생에겐 엄마가 필요했다. 동생은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엄마는 동생에게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여름을 싫어했다. 집안은 동생의 열기로 숨을 쉴 수 없었고, 그 애가 걸을 때마다 마른 각질이 사방에 떨어졌다. 엄마는 그 애가 지나는 곳마다 락스칠을 박박 해댔다. 내게는 베이지색 모직 슬리퍼를 사주었다. 

잘 때가 되면 동생은 알아서 거실 반대편의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엄마는 선심이라도 쓰듯, 타일 위로 원단 자투리와 구정물에 절은 걸레 몇 장을 깔아주고는 베란다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는 일이 무섭지 않았다. 어두운 거실을 지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암흑 너머엔, 언제나 괴물이 아닌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병원에 데려가면 안 돼?”

“돈은 있고?”

“나중에 크면 돈 벌어서 다 갚으면 되잖아. 지금 공책에 적어놓을게. 약속해.”

“네가 나중에 돈 벌면 그렇게 해주든가. 별일도 아니면서 괜히 징징대지 마. 피곤해.”

벽돌집 언덕 동네가 떠나갈 듯 눈물을 쏟아도 소용없었다. 엄마는 동생 일이라면 다른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그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집안 깊숙한 상자에 동생을 숨길 뿐이었다. 

하는 수없이 나는 매일 학원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집으로 향해야만 했다. 뒤에서 거대한 괴물이라도 쫓아오는 마냥 쉬지 않고 언덕 위를 내달렸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현관문을 열고, 집안 어딘가에 숨어있던 동생을 찾아내어 그 애의 오른쪽 눈을 닦고 또 닦았다. 그러나 녹색 진물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고여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외눈박이 아이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매일 밤 열 시가 되면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곧장 내 책상 위의 문제집들을 검사했다. 때때로 내가 제시간에 숙제를 다 끝내는 날이면, 엄마는 우리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엄마는 사람들이 우리 집 괴물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한적한 곳으로 가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아차산 등산로의 길목으로 이어진 언덕을 올랐다. 차박, 차박,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서늘한 기척을 냈다. 땅을 밟을 때마다, 숨어있던 수증기가 신발에 질퍽하게 들러붙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은 항상 나를 앞서 걸었다. 야산의 가로등에 비친 노인의 유약한 뒷모습이 어른거렸다. 노인은 가끔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희미한 시선 하나가 지난 길목 위에 남아서 우리의 뒤를 지켰다.

그날 새벽에 멀리서부터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와 잠에서 깨었다. 방문 너머 동생의 다 자란 발톱이 구겨진 넝마 사이에 끼어 허우적대는 소리였다. 옆자리에 누운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엄마는 내 등을 토닥이며 얼른 자, 했다. 마치 집안에 우리 둘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처럼, 엄마는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그 날밤, 내 안에도 그 해, 여름이 기생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희미해지더니 어느 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이었다. 그 애는 다 자란 별로 폭발했다. 
그해 여름, 열려있던 창가 너머로 넝쿨 가지가 집을 습격했다. 

엄마는 고무장갑을 낀 차림새로 창틀에 질게 붙은 담쟁이를 뜯어내면서 외관이 제일은 개뿔, 이라며 주인집 할머니를 욕했다. 엄마는 변함없었다.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가 밤이 늦도록 일만 했고, 시간이 흘러 나도 점차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대부분 시간에 우리 집은 비어있었다. 우리 모녀는 약속이나 한 듯이 밤마다 거실로 모였다. 티브이를 틀어놓고 앉아서 피식피식 웃었다. 그러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으하하 웃었다.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그 애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창가에 진 노을은 좀처럼 시들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왔다. 

엄마는 별다른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조금 있다가 내 명의로 된 통장 하나를 건넸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매달 십만 원씩 모았는지 잔액이 상당했다. 저녁에 엄마는 거실 식탁에 앉아 인터넷으로 은행 업무 보는 법, 비상 연락망, 임대차계약서 작성하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식탁보 끝자락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집에는 언제 오려고?”

식탁 등 아래로 입가의 주름이 짙게 파인 얼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괜히 밖에서 고생하지 말고 힘들면 집으로 돌아와.”

떠나는 날 새벽에 조용히 방에서 나오자 보온용 텀블러와 알루미늄 도시락 용기가 포장된 종이가방이 문고리에 걸려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졸음을 떨치려고 마른 입김에 얼굴을 문지르다가 문득 맞은편을 보았다. 기둥 밑 화단에서 검은 무언가가 웅크렸다. 사람인가, 싶더니 작은 고양이었다. 가만히 응시하던 눈빛이 점점 뚜렷해지다가 이내 반짝이며 사라졌다. ‘별이 또 있네.’ 빈자리가 아쉬워 꽁초를 그러쥐고 점을 찍는 시늉으로 별 하나. 하나. 연기 속에 총총히 피워냈다. 어느새 나는 별을 그리는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눈을 뜨자 노란 전구 불빛들이 어른거렸다. 왁자한 말소리와 스피커를 타고 번지는 음악 소리를 따라 ‘○○해수욕장 입구’에서 하차했다.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주점들 바깥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돈 워리, 비 해피’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네온사인이 선명한 간판들과 술에 취한 사람들은 한껏 달아오른 열기를 내뿜으며 뭐라고 말을 하는 듯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곧장 술집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편의점으로 들어가 캔맥주에 마른안주 몇 개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끝없는 밤바다의 전경 때문인 건지, 탁상 위에 올려둔 검은 봉지가 유독 까맣게 보였다. 불안함에 손을 집어넣어 그 수를 세어 보았다. 그러자 봉지 속의 손을 타고 어디선가 진동이 전해져 왔다. 두웅- 두웅- 바람을 타고 울리는 스피커 소리가 내게 최면을 유도하듯 일정한 감각이 내 안에 울렸다. 흡사히 골프장에서 들리는 둔탁한 타격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물류센터 근처 비어있던 부지에 골프 연습장이 새로 개장한 것이 떠올랐다. 골프 연습장은 지혜빌라 정류장과 물류센터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한번은 이른 새벽에 헤드라이트보다 밝은 빛에 이끌린 하루살이처럼 그 앞에 멈췄던 적이 있다  그렇게 도로변에 선 채로 수층 위에 떠도는 유선형의 궤적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태양이 뜰 동안 그 소리를 들었다. 두웅- 두웅- 두웅- 땅에선 그렇게 들리는 것이었다. 먼바다의 맥박으로, 그 애의 심장으로 들렸다.

 저 멀리 낯선 어선 위로 고장 난 조명등 하나가 주억거리며 나를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깜박, 깜박…… 

‘별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라면, 왜 밤하늘은 여전히 환하지 않은 것일까?’ 하는 올베르스의 의심은 정확했다. 별들의 집은 여전히 어두웠다. 자연히 우주의 끝, 그 너머를 생각했다. 우주가 시작되는 곳, 어딘가에 숨어있던 생(生)의 시작을 발견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얼굴이 차갑다. 나는 바닷속으로 기어가고 있다. 그 애와 가장 가까울 수 있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내 안의 숨을 모두 뱉어버리고는 태초의 어항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몸 위로 어느 정도 수면이 차오르자 잠복해 있던 그해 여름이 외피를 벗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난다. 이미 지나온 곳으로 향한다. 

빛 속에서 눈을 떴다.

외국 같았다. 한 번도 가지 못한 끝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짐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가려는 곳에 이미 내 짐이 있었다.

눈밭이었는지, 사막이었는지, 풀이 없는 땅이었다. 공생하던 조류가 모조리 빠져나가, 백화되어버린 대보초 한가운데 같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편에는 집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집들 뒤로, 익숙한 해안이 보였다. 육지로 밀려온 파도의 숨결이 스러지는 소리에, 나는 한낱 바람이 되어 그 망막한 평야를 질주하는 길에 있었다. 

그렇게 집들을 수없이 지나치던 중, 어느 순간 그 애와 눈이 마주치는 것이었다. 일렬로 늘어선 중 한 집은 바로 동생의 집으로, 그 애는 아주 평범한, 나와 꼭 같은 모습으로 내게 달려왔다. 나도 곧바로 그 애에게 뛰어갔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저 좋았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다 자란 그 애의 향기가 나를 만개한 들꽃마루로 가닿게 했다. 그 애의 계절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애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등허리를 감싸던 온기가 천천히 멀어졌다. 알고 있었다. 내가 향하던 끝은 그곳이 아니었다. 그 애의 집을 지나쳐 다시 나아갔다.

나는 지평선 너머, 엄마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곳에 남겨둔 내 짐들을 모두 비워야만 했다. 나는 침대 밑, 거실 탁자, 화장실 세면대, 그리고 신발장까지 뒤져서 차근차근 내 것들을 꺼냈다. 그런 나를 보던 엄마는 팔짱을 끼고서, 짐을 하나라도 빼먹지 않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누구 하나 주저하는 이가 없었다. 자연스러웠다.

그 해, 동생은 엄마의 품에 안겨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언제부터 깨어 있었는지 엄마는 겨울에 쓰던 두꺼운 차렵이불로 동생을 감싼 채 어르고 있었다. 태연히 갓난아기로 돌아간 동생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몸에 힘이 다 풀린 채로 온전히 엄마에게 의지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팔뚝은 동생의 오물에 문댄 자국들이 선명했다. 두 눈이 멀고, 두 귀가 먼 동생을 토닥거리며 괜찮아, 괜찮아, 속삭이는 엄마를, 나는 숨죽여 보고만 있었다. 

진명 선배는 찾지 못한 그 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노을이 진다. 

그림자 끝으로 한 사람이 넘어간다.

울컥, 솟아올라 놓친, 

나의 사랑이 그 너머로 흐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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