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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 드 발레
                                                                        고나경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이연은 눈을 뜨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주전자에 담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딱딱 소리를 내며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불이 붙었다. 냉장고를 뒤져 찾아낸 계란 두 알을 프라이팬 가장자리에 두드려 깼다. 내용물이 유영하듯 미끄러져 내렸다. 계란을 마저 깼다. 구릿한 냄새와 함께 새까만 덩어리가 떨어졌다. 거뭇한 액체가 새하얀 부분에 번져 나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이연은 프라이팬을 들어 싱크대 안으로 던져버렸다. 둔탁한 소리가 요란하게 집 안을 울렸다.

부엌에서 벗어난 이연은 바닥에 있는 물건을 발로 휘휘 밀쳐내 자신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털썩 주저앉아 배달 주문을 했다. 이연은 능숙하게 전화를 꾹꾹 누르고 짜장면, 볶음밥, 탕수육을 주문했다. 전화를 바닥에 내려놓고 물건 더미를 뒤졌다. 그 속에서 작은 탁자와 노트북이 하나씩 나왔다. 꽤나 오래된 듯 꼬질꼬질한 때가 잔뜩 묻은 모습이었다. 어느새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낸 이연은 믹스커피와 옥수수수염차를 앞에 두고 한참 고민하더니 믹스커피를 집어 물에 부었다. 한 모금을 마시고는 찬장을 뒤져 하얀 가루를 꺼내 두 어 숟가락 집어 넣었다.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로 돌아왔다.

노트북을 켠 이연이 즐겨찾기를 누른다. 화면이 뜨자 지체 없이 클릭만 할 뿐이었다.

벨소리가 울렸다. 이연은 전화를 쳐다보지도 않고 뒤집어버린다. 방을 잡아먹을 듯이 울리던 소리가 쥐죽은 듯 잠잠해졌다. 이연은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딩 표시가 꼬리잡기를 하며 이연의 애를 태웠다. 연신 마우스의 오른쪽만 딸깍거렸다.

하얀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연이 문 앞에 당도하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지체 없이 문을 열어 배달원을 들여보낸 이연은 음식을 내려놓는 배달원의 움직임만을 눈으로 쫓았다.

“삼만 오백 원입니다.”

빨간 철가방에서 음식을 꺼낸 배달원은 열린 뚜껑을 닫고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이연은 삼만 원만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삼 만원 아니었어요?”

“올랐죠. 일주일 전에”

배달원이 이연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수중에는 이제 이 현금이 전부였다. 눈알을 굴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가만히 이연을 바라보던 배달원은 이내 팔짱을 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돈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오백 원이 모자라서.”

“아 진짜. 장난해요?”

순식간에 배달원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연은 황급히 손에 쥔 돈을 내려놓고 물건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이 뒤엉켜 달그락거렸다. 언제 쏟은 것인지 진득한 점액이 묻어났다. 그 사이로 차가운 금속이 매만져졌다.

배달원은 어느새 손에 삼만 원을 들고 뒤를 돌아서려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연이 돌아가는 배달원의 손을 붙잡았다. 진득한 액체가 그의 옷을 잡고 늘어졌다. 검은 옷이었으나 번들거리는 점액이 옷을 얼룩지게 했다. 옷을 본 배달원이 이연의 손을 뿌리치고 소리 질렀다. 이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손에 끈적이는 오백 원을 떨어뜨렸다. 배달원이 그것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연은 바닥에 널브러진 오백 원을 주워 옷소매로 문질렀다. 점액은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았다.

싱크대에서 세제로 대충 손을 씻었다. 바닥 더미 위에 놓인 회색빛 수건을 하나 집어 손을 대충 닦아낸 이연은 노트북을 한 쪽으로 밀어내고 그 위에 중국집에서 온 반찬과 자장면을 올려놓았다. 나머지는 바닥에 자리를 조금 더 만들어서 내려놓았다. 조금 불어버린 자장면에 젓가락을 꽂고 천천히 움직였다. 소스가 면 사이로 스며들며 덩어리진 면이 풀렸다. 면을 말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탕수육과 볶음밥의 랩을 뜯어냈다. 더운 김이 올라와 얼굴을 데웠다. 숟가락을 들어 산처럼 쌓인 볶음밥의 정상을 찔렀다. 속수무책으로 밥알이 흩어져 떨어졌다. 한 숟갈을 퍼낸 이연이 입을 벌려 밥을 넣었다. 다른 손은 탕수육을 서너 개 집어 소스에 떨어트리고 탕수육을 푹 적셨다. 이연은 한참을 반복하며 배를 채웠다.

음식의 반절이 사라졌을 때쯤 이연은 밀어뒀던 노트북의 꺼진 화면을 눌러 켜 봤다. 어느새 로딩이 끝난 사이트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은행 사이트의 금 시세 거래. 그녀는 창을 유심히 바라보며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연은 연신 귀에 걸린 금붙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음식이 차갑게 식어갔다. 이연이 욕설을 내뱉으며 노트북을 덮고 옷더미 사이로 던져 넣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이연의 시선 끝에 말라붙은 자장면이 있었다. 마저 넣어 놓은 탕수육은 넝마를 입은 듯 헤진 모습이었다. 남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넣었다. 조금 퍽퍽했지만 이내 침에 뒤섞여 그 느낌은 가셨다. 빈 그릇들을 한데 겹친 이연은 그것들을 구석으로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팔로 지탱을 해 다리를 펴 보지만 이내 주저앉아버려서 결국 두 손을 바닥으로 향한 후 밀어내듯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 동작마저도 힘에 부쳤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방으로 걸음을 옮긴 이연은 또 다른 옷 더미 아래에서 적당한 외출복을 골라냈다. 죄다 늘어나고, 얼룩이 묻어 거지꼴이지만, 그나마 덜 늘어난 검은 반팔 티와 김칫국물이 발목에 묻은 청바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검은 때가 가득한 흰색 티를 벗었다. 팔을 한껏 올려보지만 제대로 손이 빠지지 않았다. 한참을 낑낑 거려서야 옷을 빼낼 수 있었다. 전신거울 앞에서 옷을 벗은 이연은 물끄러미 자신의 상체를 바라봤다. 이연의 골반에 재봉질이 되어있었다. 그 재봉 선을 퉁퉁한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이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거울에서 몸을 돌려 옷을 꿰어 입었다. 그저 벗고, 올리면 그만인 동작이지만 이연에겐 큰 과제나 다름없었다. 발끝에 달린 바지와 양말에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겨우 옷을 입은 이연의 얼굴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 땀을 닦아낸 이연은 거울 앞에 있는 상자를 열었다. 노란빛이 반짝이는 장신구들이 가득한 상자는 해적의 보물 상자 같았다. 그 안을 한참 뒤적이고는 장신구들을 하나씩 꺼내 착용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한참 바라보던 이연은 얼굴에 남은 땀을 훔치며 미소 지었다. 남은 장신구 중에 가장 작은 귀걸이 한 쌍을 작은 주머니에 넣어 손에 꼭 쥐었다.

이연은 집 근처 금은방에 들렀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뉴스를 보던 주인은 그녀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귀걸이 한 쌍을 주인의 손에 쥐어주었고, 주인은 안경을 고쳐 쓰고는 열심히 무게를 달고 살펴보았다. 마침내 이연의 손에 얼마의 현찰이 들어왔다. 만 원짜리로 꽤나 두터웠던 그것은 어림잡아 이십 만 원은 되어보였다. 그것을 주며 주인은 내가 힘 좀 썼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연은 그것을 본체만체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햇살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밝게 빛나는 태양을 찡그린 눈으로 보던 이연이 저 멀리서 떠가는 구름을 홀린 듯 쳐다봤다. 이연의 발걸음이 구름을 따라 움직였다.

바깥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사람들의 분주함, 따스한 햇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람. 모든 게 초면인 듯 몸을 놀렸다. 이연이 주위를 둘러본다. 이따금씩 자신을 힐끔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지면 소스라치게 놀라 그 반대편으로 달아난다. 홀로 하는 숨바꼭질 탓에 이연의 온 몸은 이미 땀으로 번들거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연의 가슴 위로 금붙이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벽을 짚은 채 한참을 숨만 내쉬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땐, 어두컴컴한 어느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이연에겐 지금 핸드폰이 없었다. 전화의 기능을 다 한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연락을 할 곳도, 연락이 올 곳도 이연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에게 핸드폰은 맛있는 음식을 배달받고 금 시세를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외출할 때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다리도 감각이 없다. 이연은 그저 앞으로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했다. 일단 나가면 집으로 가야지, 그리고 한숨 푹 자야겠다, 이번엔 자장면 말고 짬뽕을 시켜 먹어볼까. 종알거리며 그렇게 20여분을 걸었다. 도무지 큰 길로 나아갈 수 없었다. 아까부터 보이는 길은 그게 그거 같아서 지나왔던 길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이연이 숨을 푹 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바닥은 축축해서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드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몸을 감싸 안은 그녀는 까슬까슬한 콘크리트 벽에 등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

선잠에 들기를 십 여분. 날카로운 것이 이연의 팔을 찔렀다. 잠에 빠져든 이연은 눈을 찡그리며 몸을 그것과 반대로 돌렸다. 하지만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간헐적으로 계속 되었다. 쿡 쿡 쿡 쿡.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것도 같았다. 급기야 손이 불쑥 이연의 눈을 까뒤집어 얼굴을 들이밀었다. 놀란 이연이 머리를 박고 몸을 반대로 날렸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이 쓰라리다. 발을 최대한 힘차게 굴러 앞으로 나아가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이미 축 늘어진 다리는 힘이 빠진지 오래였다. 눈물이 통통한 볼을 비집고 흘러내렸다.

“아가, 조심해라 그러면 다쳐.”

어느새 이연의 눈앞에 다가온 형체가 말을 걸었다. 눈물에 흐릿해진 시야에 둥그렇게 말린 사람의 형상이 비춰졌다. 손을 들어 눈으로 가져다 대자, 그 형상이 손을 덥석 잡아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이연의 팔을 세게 잡아끌었다. 겨우 다리를 세운 이연은 그 따스한 손이 이끄는 곳을 그대로 따라 걸었다. 채 3분도 되지 않아 철을 긁는 소리와 함께 초록색 대문이 열렸다. 그 새 시야는 맑아져서 자신을 이끄는 형체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파마머리를 한 조그마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그녀를 툇마루에 앉히고는 분주히 움직였다. 부엌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따스한 온기가 이연에게까지 전해졌다. 할머니가 작은 반상에 이것저것을 올리고 총총 걸음을 옮겨 이연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이연이 할머니를 바라봤지만, 어느새 방으로 사라진 터라 물을 새가 없다. 밥상 위에는 하얀 쌀밥과 계란말이, 김, 배추 몇 조각이 둥둥 떠다니는 된장국이 더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 배가 요동친다. 군침을 꼴깍 삼킨 이연은 수저를 들어 하얀 밥을 듬뿍 떠 올렸다. 밥이 씹을 새도 없이 입 안에서 사라졌다. 계란말이를 입에 욱여넣고, 목이 막히면 된장국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은 음식이 가득해서 우물거리면서도 김에 손을 가져간다. 할머니가 어느새 손에 옷가지를 들고 그녀의 앞에 와 다그쳤다.

“아무도 안 뺏어먹는다 아가야. 천천히 먹어라 응?”

미어터지도록 밥을 밀어 넣은 이연의 앞에 물과 반찬을 더 내왔다. 할머니가 그 곁에 털썩 앉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입 안의 음식을 모조리 꿀꺽 삼키자 이연의 입가로 물 컵을 들이밀었다. 컵에 대려는 손을 찰싹 맞은 이연이 물을 도로 뱉어내며 콜록거렸다. 옷이 온통 물에 젖어 흥건했다. 놀란 할머니가 이연의 등을 토닥였다. 손에 든 물 컵을 밀어낸 그녀가 숨을 고르는 사이 한쪽에 쌓아놓은 옷과 수건을 이연의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눈짓으로 불투명한 유리가 박힌 문 하나를 가리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옷을 손에 쥔 이연은 또다시 그 엄청난 힘에 밀려 욕실로 들어갔다. 검은 때가 군데군데 묻어있는 하얀 타일이 깔린 곳이었다. 오른쪽 구석에 수도꼭지와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빨간 대야가 놓여있었다. 수도꼭지 위에는 핑크색 샤워 수건이 걸려있고 조각 비누가 이리저리 뒤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가로세로 십오 센티미터 정도 되는 창이 두 개 밖으로 나 있을 뿐이었다. 그 옆에 검은 선이 네모나게 눌러 붙어 있었는데, 접착제를 바른 듯 진득했다.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욕실에 울렸다. 화들짝 놀란 이연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다. 불투명한 유리문에 검은 그림자가 서려있었다. 머리 부분이 구름모양인 것을 보니 할머니가 그녀를 재촉하는 것이었다. 이연은 얼른 물을 틀고 수건에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냈다. 몽실한 거품이 이연의 몸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 촉감에 피식 웃음을 흘린 이연은 몸 구석구석을 닦았다. 아까 쓸린 상처가 물에 닿아 아렸지만, 적당히 따뜻해진 물을 맞으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한층 뽀얘진 얼굴로 이연이 문밖을 나왔다. 할머니가 준 새하얀 백조가 그려진 셔츠가 몸에 꽉 끼어 몸을 우겨넣었다. 티셔츠가 작아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옷을 그냥 바꿔 입을까 고민하는 사이에 할머니가 순식간에 이연의 옷을 손에 쥐고 사라졌다. 돌아온 할머니의 손에는 그녀의 옷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이고 예쁘다 우리 아가.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쁘누?”

“제가 예뻐요?”

어느새 나란히 할머니의 손이 이연의 볼을 감싸 살살 문질렀다. 주름이 가득한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이연이 어느새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럼 누구 손녀인데, 제일 예쁘지 암. 그니까 힘들면 너무 애쓰지 말아 아가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철문이 왈칵 열리고 한 아이가 쪼르르 들어왔다. 할머니하며 달음박질을 친 아이는 곧장 할머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화사한 분홍색의 튀튀 자락이 삐죽 튀어나와 하늘거렸다.

“우리 똥강아지 왔어? 배는 안 고프냐?”

양 갈래로 땋은 아이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으며 할머니가 물었다. 한참을 품에서 비비적거리던 아이는 고개를 들어 이연을 빤히 쳐다봤다. 이연은 그 시선에 흠칫 놀라 자리에서 박차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뭐라 뭐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이연은 생각할 새도 없이 앞으로 발을 움직였다. 얼마나 뛰었을까. 어느새 도로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좌우를 살펴봤지만 컴컴한 어둠에 깜빡거리는 가로등만이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반대편에서 강한 빛이 눈을 찌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귀에 꽂혔지만, 이연은 몸을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차가운 철 덩어리가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 쪽을 바라봤다. 희미한 사람의 형상이 이쪽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위험하다고. 이연의 시선이 붕 떴다가 중력에 눌려 속절없이 추락했다.

 

“정이연씨 정신 드세요?”

온 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이연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연이 입을 뻐끔거리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그녀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여……기…… 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의사가 고개를 들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 몸을 돌려 사라졌다. 천천히 굴리는 이연의 눈 잎에 한 여자가 걸린다. 여자는 훌쩍거리며 눈을 비비고 있었다. 여자는 아름다웠다. 손으로 가려졌지만 조막만한 얼굴, 이연의 절반도 안 될 것 같은 가녀린 몸매. 꽃무늬가 자잘하게 들어간 푸른 원피스는 여자의 가녀린 몸을 감싸고 있었다. 굵은 곡선이 진 긴 머리가 이연의 시선 끝에 하늘거렸다.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그렇게 울어주는 걸까. 손을 들어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렇게 비비면 피부에 안 좋은데. 입을 벙긋거려보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연아. 이, 어났어? 흑, 찮아?”

자신을 보는 이연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여자는 어느새 이연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던 것인지 눈과 코 붉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까는 손에 가려 보이지 않던 눈가는 화장이 번져 물먹은 수묵화처럼 번져나갔다. 코에 콧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훌쩍이는 꼴은 어여뻤던 여자의 얼굴을 볼썽사납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네가, 분, 네가 맞, 맞는데 그래서 따라, 따, 갔는”

울음과 뒤섞인 말이 어지럽게 튀어나온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울기까지 하니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연은 힘겹게 손을 들어 여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을 막힌 여자가 눈을 깜빡거리며 이연을 내려다 봤다. 숨을 크게 들이 쉰 이연이 입을 다시 뻐끔거리자, 여자가 고개를 내려 이연의 가까이 다가갔다. 목에 힘을 주어 한자씩 발음하며 내뱉었지만, 시끄러운 주위 탓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지 여자는 한참을 그 자세로 이연의 옆에 있었다. 이따금 미간을 찡그리며 귀를 더 가까이 가져다 대기도 했다. 그제야 이연의 말이 들린 것인지, 여자의 표정이 확 피며 눈물자국이 가득한 얼굴을 손으로 문질러 지워냈다. 여자가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이연은 그때 빠르게 다가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쳐 병원에 실려 왔다. 이연을 치고 간 차는 그대로 도주했고, 그랬기에 현장에 있던 여자가 빠르게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이연은 차가운 도로에서 죽었을 지도 몰랐다고 말이다. 설명을 하고 난 여자는 한참을 다행이라고 읊조렸다. 여자가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할 때,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정이연씨,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하얀색 차트를 펄럭거리며 남자가 이야기했다. 여자는 의사의 입을 바라보며 이연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머리에 상처가 크게 나고 팔이 부러졌다. 만약을 위해 입원할 것을 의사가 권유했다. 나는 당연히 집으로 가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여자가 말을 가로채고 입원수속을 하러 떠났다. 약품과 피가 뒤섞인 냄새가 이연의 코 주위에 진동했다.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 고통에 몸부림치는 절규가 머리를 울렸다. 아수라장과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여자를 기다렸다.

이연이 들어간 곳은 육 인실 병실이었다. 이미 병실에 있던 사람들은 피곤에 찌들어 다크서클이 한 가득이었다. 자리에 눕는 내내 적막해서 몸 하나 움직이는 것도 눈치 보일 지경이었다. 꿰맨 머리가 시큰거렸고, 팔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숨 쉴 만은 했다. 자리가 창가여서 이연은 입원하는 온 종일 바깥만 내다보며 있었다.

“또 바깥구경하고 있었어? 밥은?”

윤지가 밝게 인사했다. 양 손에 한가득 쇼핑백을 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연의 옆에 자리한 보호자 침상에 앉았다. 사고를 당한 이후, 윤지는 계속 이연을 챙겨줬다. 매일같이 왔다 갔다 하며 이연의 상태를 살폈고, 과자며 음료수며 이연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사가지고 오거나, 이연이 듣던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재잘거리다가 집으로 갔다. 윤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입원한 지 이틀이 지나고 나서였다. 뭐라고 불러야 하나 망설이던 이연이 결국 이름을 물었다. 그때 자신의 몫으로 가져온 샐러드를 깨작거리다가 고개를 들고 빤히 바라보던 표정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연은 그 표정을 보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이윤지. 이연의 동창이었다.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윤지가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중학교 때만 해도 이토록 날씬하지 않았다.

윤지는 중학교 2학년 때, 돌연 전학을 갔다. 그때 독하게 다이어트를 했고, 원하는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꿈을 이루고 난 후 이연을 찾아다녔지만 만나지 못해서 낙담하던 차에 이연을 집 근처에서 보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연은 여자아이를 보고 정신없이 뛰쳐나갔던 그 날을 떠올렸다. 뛰쳐나가면서 중심을 잃어 휘청거릴 때 누군가가 손으로 이연의 몸을 떠받쳐주었다. 그것을 인지할 새도 없이 이연은 그대로 달려 나갔다. 그때 이연을 잡아준 것이 윤지였고 윤지는 이연을 붙잡으려고 쫓아간 덕에 이연을 구할 수 있었다.

“넌 내 우상이자, 은인이었거든. 그래서 꼭 찾고 싶었어.”

하얀 원피스를 입은 윤지가 더 환하게 웃었다.

 

며칠이 지나고 퇴원을 해도 되겠다는 소견을 받았다. 아직 팔은 깁스를 해야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있어서 풀게 될 터였다. 이연은 퇴원을 위해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맨몸으로 나와 사고가 난 탓에 짐이랄 것도 거의 없었지만, 그녀가 지녔던 귀금속이나 남의 옷은 꼭 챙겨야 했다. 침대 옆 서랍 위에 가지런히 접혀있는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사고의 흔적으로 흰 셔츠가 얼룩으로 물들었다. 이연의 피도 붉게 물들어 빨아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옷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는 이연의 얼굴에 고뇌가 쌓여갔다.

“어 이거 뭐야? 이연이 네 옷이야?”

어느새 온 윤지가 이연의 손에서 옷을 빼앗아 이리저리 뒤집어 봤다. 옷에 프린트 된 백조 무늬를 유심히 보던 윤지는 고개를 돌려 이연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

“아, 이거 어느 할머니가 주셨어.”

“할머니?”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빼앗아 곱게 접었다. 그리고 선반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장신구를 하나하나 착용하기 시작했다. 빈자리가 하나씩 채워졌다. 마지막으로 귀걸이를 걸던 이연은 한 짝이 사라진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바닥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연은 왼쪽 귀의 빈자리만 황망하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윤지가 한 짝이 사라진 귀를 보여주며 울상을 짓는 이연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어깨를 토닥이며 이연의 가방을 손에 쥐고 문 밖으로 떠밀었다.

“그런 건 다시 사면되지.”

이연의 몸을 떠밀어낸 윤지가 이연의 손을 잡고 택시를 잡았다. 이연은 택시가 어디로 가는 지도 묻지 않고 바깥만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빌딩이 서서히 깎이더니, 납작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로 들어섰다. 택시가 멈췄다. 윤지가 값을 치른 후 내리고 이연도 뒤따라 내렸다. 어느새 트렁크에서 이연의 짐을 꺼낸 윤지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차로는 들어가기 힘든 좁다란 길이 이어졌다. 회색빛의 돌담이 있는 길은 무언가 친숙했다. 윤지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할머니, 나 왔어요. 친구도 왔어.”

녹색의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고, 한 아이가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어?”

분홍색 셔츠를 입고 양 갈래로 귀엽게 땋은 여자아이가 이연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문을 밀어냈다. 윤지가 어느새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하나 오늘 발레 학원 안 갔네? 할머니는?”

“나 오늘 안가는 날이잖아. 아까부터 주무셔.”

하나가 입가에 케첩을 묻히고 포크에 찍었던 계란조각을 마저 집어넣었다. 윤지가 하얀 힐을 벗고 붉게 달아오른 발을 주물럭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연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멀뚱히 서 있었다. 윤지는 이연에게 손을 휘적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그 손짓에 이연이 조금씩 집 마당을 가로질렀다. 하나가 이연을 힐끔 쳐다보다가 다시 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밥을 씹는 하나를 보며 이연이 침을 삼켰다. 그 시선을 느낀 하나가 고개를 들어 이연을 마주봤고 이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지 않았다.

“이모는 밥 먹었어?”

“아니, 배 안 고파.”

“이모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하나가 이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연의 배에서 대답하듯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수차례 났다. 이연이 얼굴을 붉히며 배를 감싸 쥐었지만 소리는 그 틈을 비집어 나왔다. 마당을 크게 울리는 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이연에게 집중됐다. 이연은 애써 그 시선을 피했다.

“그런가 보네. 집에 뭐 남은 게 있던가?”

윤지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연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푹 숙였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배 속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타다닥 소리와 함께 가스불이 점화되었다. 물을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넣은 윤지가 금방 라면을 담은 냄비를 쟁반에 받쳐 들고 나타났다. 하나가 어느새 그릇을 다 치우고 상을 이연의 앞으로 가져왔다.

“자, 이것 밖에 줄 게 없다. 지금 장을 본 지가 좀 돼서. 미안해.”

윤지가 냄비를 가지고 돌을 밟아 올라섰다. 제 딴에는 조심하는 것 같았지만, 보는 사람이 절로 움츠러들 만큼 비틀거렸다. 냄비를 잡은 손이 라면물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거린다. 냄비를 넘어설 것만 같은 파도에 흠칫한 윤지가 잠시 머뭇거렸다. 숨을 한번 들이 쉰 후 상 앞으로 내딛고 허리를 숙여 팔을 내밀었다. 이연은 조금 뒤로 물러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연의 모습에 피식 웃고만 윤지가 냄비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팅 소리와 함께 상 위에 놓여있던 냄비 뚜껑이 마당 한가운데로 나뒹굴었고 냄비의 물은 반절이나 쏟아져 한강을 이루었다. 김이 폴폴 나는 상을 보며 윤지가 눈동자를 굴렸다. 어느새 행주를 가져온 하나가 이연의 앞을 막아서고 이모의 사고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아휴, 이모 언제까지 이렇게 덤벙거릴 거야?”

한숨까지 폭 쉬어가며 박박 상을 닦고 냄비를 상 가운데에 다시 올려놓는 아이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이를 타이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서 이연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를 들은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연을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미소를 지우진 못했지만.

“언니, 이거 먹어요.”

하며 하나가 상을 다시 앞으로 밀어주었다. 라면은 물이 절반이나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한가득 남아있었다. 면발은 물에 갇혀 그 꼬랑지만 힐끔힐끔 모습을 들어 낼 정도였다. 이연이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하나가 고개를 숙여 냄비를 보더니 윤지에게 소리쳤다.

“이모, 도대체 물을 얼마나 넣은 거야?”

스프를 넣었지만 물에 희석되어 허여멀건 라면. 하나는 이제껏 라면 물도 못 맞추면 어떻게 하냐고 하며 이모를 타박했다. 윤지는 그 상황이 익숙한 듯 귓구멍을 살살 파며 딴청을 피웠다. 아이가 다시 한 번 더 크게 한숨을 쉬고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윤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연의 앞으로 와 앉았다.

“먹을 수 있어. 맛없진 않을 걸? 그치? 얼른 먹어.”

재촉하는 눈빛에 이연이 젓가락을 눈으로 쫓았다. 상의 끝으로 몰린 젓가락이 외로이 남아있었다. 오른 팔을 들어 그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머리가 함께 쭉 딸려 나갔다. 그제야 오른손에 깁스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난감한 표정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이연을 보며 윤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모, 언니 손을 봐. 어떻게 먹어?”

어느새 손에 쟁반을 들고 나타난 하나가 이모에게 말했다. 윤지는 그제야 깁스를 한 이연의 오른손을 봤다. 그리고는 하나가 쟁반에 들고 온 포크를 왼손에 쥐어주었다. 하나는 쟁반에 있던 김치와 물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모의 옆자리에서 스케치북을 펼치고는 배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왼손으로 포크를 집은 탓에 라면은 잘 집히지 않았다. 결국 이연은 한강물 같은 라면 탕 안을 휘휘 내저어 라면 몇 가닥을 걸고 나면 고개를 쭉 내밀어 입가로 가져가 빨아들였다. 물이 한 가득이었던 탓에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배를 채우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이연은 국물도 남기지 않고 냄비를 싹 긁어먹었다. 배가 부르고 나자 이곳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그런 그녀를 윤지가 다시 자리에 앉혔다.

“너 혼자 어떻게 밥 먹고, 씻고 그러려고? 팔 붙을 때까지 만이라도 우리 집에서 쉬어.”

입을 벙긋거리자, 윤지가 그녀의 입을 손으로 턱 막고 상을 들어 부엌으로 사라졌다. 말을 잇지 못했던 이연이 멍하니 마루 끝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은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얽혀갔다. 발소리가 들리자 이연이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봤다. 윤지가 기지개를 켜며 돌아오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몸을 늘인다. 윤지의 스트레칭은 자리로 와서까지 계속 됐다. 이내 줄넘기를 들고 오더니 수를 세며 몇 시간을 그렇게 뛰었다. 저녁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해는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고 밤공기는 차가운 숨을 내뱉었다. 이연의 눈꺼풀이 알음알음 감겨갈 무렵 줄넘기가 땅을 차는 소리가 멎었다. 하나는 윤지가 운동을 하든 말든 그림을 그리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땀이 맺힌 이마를 손으로 훔쳐내며 툇마루 쪽으로 몸을 돌린 윤지가 이연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에? 왜 안 들어갔어?”

“네가 안자니까. 난 방이 어딘지도 모르고.”

그제야 새된 소리를 지르며 윤지가 황급히 욕실로 들어갔다. 십분도 안 돼서 윤지가 머리에 수건을 말고 나타났다. 그새 깜빡 잠이 든 이연은 윤지가 어깨를 두드리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가 잠에 따져든다. 그런 이연을 용케 일으켜 방으로 끌고 들어간 윤지는 이부자리를 펴고 이연을 눕혔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얌전히 누워 다시 잠에 빠져드는 이연을 보며 윤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햇빛이 이연의 눈을 두드리고 이연이 눈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바깥은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갓 지은 밥의 고소한 냄새가 이연을 홀렸다. 하나가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언니, 일어났으면 밥 먹어요.”

고개를 끄덕인 이연이 이불의 양쪽 끝을 한 손으로 모아 쥐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윤지가 손을 탁 치고는 나가서 밥 먹을 준비나 하라고 그녀를 떠밀었다. 그래도 이불 끝을 놓아주지 않자 반대편을 잡고 이연을 털어냈다. 하는 수 없이 이연은 밖으로 나와 하나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머니 나 나가요.”

윤지가 구두에 발을 밀어 넣으며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아무렇게나 맨 가방 안에서 발레슈즈 한 쌍이 떨어졌다. 하나와 함께 국을 들고 오던 할머니가 상 옆에 그것을 허겁지겁 내려놓고 윤지의 손을 잡았다.

“아가씨 왜 밥도 안 먹고 가우? 예쁜 얼굴이 반쪽이구만.”

“아니 할머니 나 윤지야. 나 연습가요. 이제 공연 있잖아.”

“응? 윤지? 아가?”

“응 윤지. 할머니 아가.”

윤지의 손을 잡고 있던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윤지와 이연을 번갈아 본다. 하나는 마저 국과 반찬을 올려놓고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상 앞에 앉혔다. 이연은 앞에 떨어진 발레 슈즈를 집어 들었다. 매끈한 표면이 손에 닿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고요히 그것을 든 채 미동조차 없는 이연을 바라보던 윤지가 그녀의 손에서 슈즈를 가지고 갔다. 손을 빠져나가는 슈즈의 촉감에 화들짝 놀란 이연은 허공을 잡아보지만 슈즈의 리본 끝자락이 손끝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다녀올게.”

윤지의 말에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밥을 다 먹은 하나는 밥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빨간 책가방과 보조 가방 함께 윤지의 뒤를 쫓아 뛰어갔다. 두 사람이나 빠져나간 집은 고요했다. 이연은 몸을 돌려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봉으로 쌓은 밥이 푹푹 사라졌다. 그것을 빤히 지켜보던 할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더 챙겨왔다. 마저 밥을 먹던 이연의 발 근처로 밥이 가득 담긴 그릇이 굴러 부딪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할머니는 입을 연 채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 누구, 누구여?”

 

이연은 빠르게 윤지의 집에 적응해갔다. 윤지의 할머니는 치매가 있어 윤지와 이연을 혼동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이연에게 아가라고 부르며 밥이며 간식이며 먹이다가 화들짝 놀라 누구냐고 묻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연은 왜 그녀와 자신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지만,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금방 그 고민을 잊었다. 할머니는 깜빡깜빡 하는데도 불구하고 늘 삼시세끼를 챙겼고, 음식들은 너무도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래서 이연은 음식들을 모조리 받아먹었다. 그게 마냥 기쁜 것인지 할머니는 점점 준비하는 음식의 양을 늘려갔다. 매일같이 잠을 자다가도 밥 때가 돼 가면 벌떡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나는 할머니가 소시지 따위의 반찬을 내놓는 일이 많아지자 꽤나 행복해보였다. 할머니는 좀처럼 소시지나 햄 같은 반찬은 내어주시지 않았다며 언제라도 사라질 신기루를 잡는 사람처럼 볼이 빵빵하게 소시지를 밀어 넣고는 했다. 그렇게 아침과 저녁은 하나와 함께 셋이서 먹었고, 점심은 하나가 학교에 가는 시간이라 함께 먹지 않았다.

하지만 윤지가 무엇을 먹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이연이 병원에 있던 날처럼 자그마한 샐러드박스를 가져다 오물거릴 뿐 밥상에 올라온 쌀 한 톨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샐러드박스마저도 집에 있는 동안 딱 한 번 먹었고 절반이 넘게 남아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하나나 할머니가 잔소리를 해 댔지만, 그때마다 윤지는 딴청을 피우거나 밖으로 나가버리는 따위의 행동을 해서 슬슬 그 자리를 피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마지못해 밥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는데, 그 표정을 이연은 잊을 수가 없다. 최대한 밥상에 멀리 떨어져 앉아 위의 음식들을 내려다보는 입술을 굳게 다문 윤지의 표정은 갈망,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밥상에 앉은 윤지는 할머니가 주는 밥을 굳이 덜어내고 한 숟가락을 떠서 반찬 한두 개를 집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아주 느리게 꼭꼭 씹어 삼켰다. 그때마다 윤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윤지의 모습을 보며 이연은 의아했지만, 하나는 그게 익숙한 모양인지 묵묵히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밥을 입에 넣기만 했다. 할머니만이 이따금씩 고개를 들고 윤지가 먹고 있는지 확인했고, 그때마다 윤지는 입을 과장스럽게 우물거리며 입에 음식물이 있음을 어필하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늘 아이 착하다 우리 아가라고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 음식물은 윤지의 몸에서 남아 소화되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잠든 밤, 윤지가 이연의 옆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윤지의 방은 할머니와 하나의 방과 멀리 떨어져있지만, 화장실에는 가까웠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연은 윤지의 외출이 어떤 목적인지 알 수 있었다. 윤지가 나가고 나서 문틈으로 밀려오는 화장실의 불빛과 누군가 잠에서 깰까 억눌린 구역질 소리가 이연의 감각을 깨운 것이다. 빛의 틈새로 눈을 들이밀자, 열린 화장실문 사이로 변기를 붙잡은 채 목 안에 손가락을 넣고 있는 윤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윤지가 손을 씻고 움직이자 황급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다.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이연의 옆에 바짝 붙는 윤지의 몸에서 시큼한 위액 냄새가 풍겨왔다.

윤지가 화장실에 가서 음식을 토하는 일은 이연이 집에 머무는 내내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윤지는 이연의 몸에 바짝 붙어 잠을 청했다. 그렇게 되면 이연은 잠을 더 이상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새웠다. 차가운 윤지의 몸이 다시 덥혀질 때까지 충실히 난로의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아무도 윤지의 밤을 알지 못하는 듯했지만 이연은 가족 중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구에게도 기쁜 일은 아니리라. 차라리 그 우울한 기분을 홀로 짊어지는 것이 이연의 마음에도 편했다.

윤지는 나갈 때면 늘 스포츠가방을 꿰어 들고 원피스를 입었다. 원피스가 입기 쉽고, 예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연에게 자랑처럼 보여준 그녀의 옷장 안에는 세상의 온갖 색이 원피스로 담겨있었다. 무늬도 물방우르 체크, 꽃, 민무늬 등 각양각색의 것들이 가득했다. 아침이 되어 이연이 눈을 뜰 때 즈음이면 윤지는 이미 옷장 앞에서 입을 원피스를 고르고 있었다. 그렇게 옷을 입고 나면 모서리가 헤어져 보풀이 붙은 스포츠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해가 다 떨어져갈 즈음 녹초가 되어 돌아왔고, 어김없이 운동을 했다. 늦게까지 줄넘기를 하고 있노라면 이따금 하나가 뛰쳐나와 화를 내고 들어가곤 했다. 고요한 밤을 때리는 줄넘기의 소리가 너무 컸던 탓이다. 그러면 윤지는 하나를 힘껏 노려보다가 하나의 날카로운 시선이 돌아오면 깨갱하고 비 맞은 강아지 마냥 털레털레 방으로 돌아갔다.

하나는 정말 야무지고 강한 아이였다. 철없는 이모와 치매기가 있는 할머니 사이에서 제 할 일을 도맡아 했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의 영혼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연에게 쪼르르 달려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할 때나 이연이 가지고 온 노트북에서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옷 입히기 게임 따위를 알려줬을 땐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이연은 그런 아이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상이나 게임들을 하나가 돌아오기 전에 찾아보고는 했다.

어느 날은 만화를 같이 보게 되었는데 녹색의 땅딸막한 도깨비가 한 아파트에서 두 남매를 만나 귀신들을 성불시키는 이야기였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이야기인가 했지만 아이들이 꽤나 좋아한다기에 하나에게 보여줬다. 매일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만화를 보여 달라고 할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 하나는 그 중에서도 오르골에서 튀어나온 발레리나 귀신을 좋아했다. 하루 종일 백조의 호수 노래를 틀고 분홍빛 튀튀를 입은 채 마당을 쏘다녔다. 이연은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하나는 무척이나 발레를 좋아했다. 처음 만났던 그 날에도 하나는 발레학원을 다녀온 것이었다. 몇 달 째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아이는 이연이 보기에도 곧 잘 발레 동작을 했다. 다리를 찢는 것 하며 움직임까지 아이답게 발랄하고 통통 튀었다. 무엇보다 시범을 보인답시고 이연의 앞에서 동작을 하고나면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이연의 반응을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봐요. 언니 나 잘하죠?”

하나가 이연의 앞에서 다리를 쭉 빼고 양팔을 활짝 펼쳤다. 땅딸막한 다리 한 쪽으로 중심을 잡으려니 살짝 흔들렸다. 이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나의 팔과 몸통을 바르게 잡아줬다. 그러자 비틀거렸던 하나의 몸에 균형이 생겼다.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연을 쳐다보자 이연이 미소를 지었다.

“뭐야 이 난리는?”

푸른색 시폰 원피스를 입은 윤지가 하늘하늘 걸어 들어왔다. 손에는 검은 봉지하나가 들고 다니던 가방과 함께 달려있었다. 하나는 쏜살같이 그녀에게 달려가 손에 있던 검은 봉지를 낚아챘다. 외마디 비명이 마당을 울렸지만 신경 하나 쓰지 않았다. 봉지에 든 것은 호떡이었다. 금방 만든 것인지 아직도 따끈따끈했다. 호떡의 존재를 확인한 하나가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 윤지는 호떡만 반겨주는 조카의 모습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지만 이내 하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하나는 호들갑을 떨며 할머니를 불렀고, 손님인 이연을 포함한 온 식구가 둘러앉아 호떡파티가 시작됐다.

어느새 종이컵을 가져온 하나가 한사람씩 배분을 하고, 윤지가 호떡을 집어 종이컵에 가지런히 넣어주었다. 아직 뜨거운지라 몇 번을 놓칠 뻔 했고 그때마다 하나가 제 이모에게 조심하라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한 것은 덤이다. 기껏 사왔더니 혼내기나 한다며 토라진 윤지를 내버려두고 세 사람이 호떡을 먹기 시작했다.

이연이 호떡의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럽게 베어 물었다. 그 사이 겉은 살짝 식었지만 안은 뜨끈해서 이에 그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베어 문 자리에 바람을 후 불어 넣고 과감히 입에 집어넣었다. 녹은 설탕과 뒤섞인 견과류가 툭 터져 나와 이연의 손과 무릎에 떨어졌다. 내용물이 아직 뜨거웠던 탓에 소스라치게 놀라 호떡을 놓쳤다. 반도 채 먹지 못한 호떡이 잔디를 헐벗은 흙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언니 괜찮아요? 이걸로 닦아요.”

하나가 물티슈를 이연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들고 설탕을 닦아내는 동안 이연은 바닥으로 추락한 달콤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라봤다.

“이걸로 먹어. 저건 어쩔 수 없고.”

“응 고마워.”

그 시선을 느낀 윤지가 남은 호떡을 새 컵에 담아 이연의 손에 쥐어주었다. 설탕을 닦은 물티슈를 하나가 이연의 손에서 가지고 가고 다시 평화롭게 가족은 호떡을 뜯었다. 간간히 이연과 하나 둘은 오늘 봤던 만화와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따금 터지는 하나의 웃음을 윤지가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하나야, 근데 너 왜 나는 이몬데. 이모 친구는 언니라고 부르냐?”

갑작스런 호칭 논란에 모두의 시선이 윤지에게 집중됐다. 질문을 받은 하나는 호떡을 열심히 씹던 입을 멈추더니 눈을 굴렸다. 그리곤 툭 던졌다.

“예쁘잖아. 예쁘면 언니야.”

대답에 황망한 표정을 지은 윤지와 붉은 얼굴을 하고 눈을 내리깐 이연. 둘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호떡을 뜯는 하나와 영문도 모른 채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까지 네 사람은 그 후로 별다른 대화 없이 호떡을 먹고 치웠다. 잠자리에 들어간 이연은 하나의 대답을 떠올리고는 왜 그런가 묻고 싶어졌지만 피곤이 몰려온 탓에 금방 깊이 잠들어 버렸다.

이연이 꽤 오랜 시간동안 윤지의 집에 의탁하는 동안,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 거울이었다. 욕실에 끈적이는 검은색의 자국. 그 자리에 있던 건 분명 거울이었다. 방 곳곳에 자국만 동그랗게 혹은 네모나게 남은 채 조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초반에 눈을 뜨고 거울을 습관처럼 찾던 이연은 있어야할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그것을 찾기 위해 눈을 비비며 윤지의 방 안을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하지만 윤지는 그것이 원래 없었던 것인 양 행동했고, 그런 그녀에게 이연은 거울의 존재를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이연의 오른팔은 금방 나았다. 실은 다 나은지 꽤 되어가지만 이 가족 안에서 더 있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 바람에 하루 이틀 집에 가는 일을 미뤘고, 윤지의 가족들도 윤지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라 눌러 붙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집을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가족들에게 전했다. 가족들은 그냥 더 있으라고 이야기 했지만 더는 신세를 질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특별히 밥상에서 함께 저녁으로 샐러드를 먹은 윤지는 피곤하다며 운동을 쉬었다. 그 바람에 이연 혼자 마루에 걸터앉아 마지막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등을 누군가 쿡 찔렀다.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손에는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고, 그 봉투를 본 이연은 그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임을 바로 알아챘다.

“이거 아가씨 꺼 맞죠? 그때 두고 간 거.”

할머니가 이연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연은 그것을 받아들며 꾸벅 인사했다. 할머니의 눈동자가 맑게 빛났다. 마치 쏟아져 내리는 별빛 같았다.

“내가 어릴 때 윤지랑 아가씨가 너무 닮아서 착각 했나 봐요. 치매가 있거든. 얼른 죽어서 짐을 덜어줘야 하는데.”

이연의 옆으로 가 앉은 할머니가 이연의 손을 붙들고 꼭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자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이연이 할머니의 손을 더 꼭 잡았다. 할머니가 이연을 마주보고 활짝 웃어주었다. 이연 또한 대답하듯 미소를 지었다. 바람이 불어 이연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할머니의 파마머리를 살짝 치고는 달아났다. 밤하늘이 반짝이는 밤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눈을 떴다. 이연은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더듬어 붙잡고는 희미한 빛 아래로 가져가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옆에 있던 윤지는 나간 지 오래된 것인지 그녀가 누웠던 방바닥이 서늘했다. 이연은 나갈 준비를 했다. 일찍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채 조용히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만났던 그 날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야만 할 것 같았다. 실은 그녀 자신이 이 가족을 떠나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누구라도 얼굴을 보면 하루라도 더 눌러 앉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느껴봤던 따뜻함을 떠올리던 이연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옷장 옆 틈 사이로 다가가 구석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마지막 선물을 끄집어냈다. 며칠 전, 하나는 집으로 돌아와 통돌이 세탁기에서 탈수를 마친 빨래들을 끄집어냈다. 키가 작은 탓에 거의 세탁기에 매달리다시피 하다 보니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이연은 하나에게 바구니를 들게 하고 대신 빨래를 끄집어냈다. 그 빨래 더미 안에서 그녀의 옷을 발견했다. 사고가 나던 날 할머니가 쏜살같이 가지고 사라진 이연의 옷이었다. 바지의 주머니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졌는데 오만 원짜리 두 장이 물에 젖어 찰싹 붙은 채 딸려 나왔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펴내어 살살 말리고 하나가 빌려준 교과서 사이에 넣어 빳빳하게 만들었다. 그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선물로 바꿔온 것이다.

이연은 가장 큰 비닐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손때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거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 놓인 쇼핑백 안에는 어린이용 발레슈즈, 티셔츠, 스킨로션이 담겨있었다. 발레슈즈는 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준비했고, 티셔츠는 사고 때 엉망이 되어버린 백조그림의 티셔츠 대신이었다. 티셔츠는 최대한 비슷한 것을 찾으려 이리저리 돌아다녀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얀 오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대신 샀다. 스킨로션은 할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화장대에서 나오지도 않는 화장품을 손바닥에 두드려가며 쓰는 모습을 봤다. 이연은 물건을 들고 하나씩 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방에 몰래 들어가 화장품을 가져다 놓기만 하면 됐다. 이연이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문 앞에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대문에서 소리가 났다. 이연이 깜짝 놀라 구석 틈 사이로 몸을 들이밀어 숨겼다. 어느새 윤지가 성큼성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이연이 숨을 푹 내쉬며 빠끔 고개를 내밀었다. 심장이 뛰어 입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다. 왜 무슨 도둑마냥 이렇게 떨리는 것인지. 매년 크리스마스에 온 세계의 집을 떠돌아다니는 산타클로스가 존경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식은땀을 살짝 훔친 이연이 문 앞으로 가 숨을 들이쉬고 문을 조금씩 밀어냈다. 유독 문이 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와 일 센티미터도 밀어내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다가 밀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이연이 들어갈 만큼 문틈이 벌어졌다. 이제 한 번만 더 밀면 된다. 마지막으로 숨을 들이쉬고 문에 손을 대는 순간,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무언가 깨지는 파열음이 마당을 울렸다.

큰 소리에 잠들었던 하나와 할머니가 눈을 떴다. 그들은 문 앞에 있는 이연을 보고 눈을 비비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하나가 입을 떼기도 전에 이연은 윤지의 방으로 달려간 후였다. 이연이 사 놓은 거울이 처참히 깨진 채 등불을 맞고 반짝였다. 서서히 해가 떠가며 그 풍경은 더 또렷해졌다. 깨진 거울조각 위에 주저앉은 윤지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유리를 밟은 것인지 발바닥 부근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이연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윤지는 듣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이연이 듣기에 얼핏 ‘아니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연이 윤지의 어깨에 손으로 토닥였다. 윤지의 몸이 떨렸다. 윤지가 고개를 들었다. 윤지의 눈이 텅 비어 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윤지가 별안간 일어섰다. 그 바람에 이연의 몸체가 휘청거렸다. 이연을 밀쳐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힘에 밀린 이연이 반대로 나뒹굴었다. 허리가 욱신거려서 쉽사리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나가 이연을 부축해 일으켰다. 이연이 바로 윤지를 뒤따라 대문 밖으로 나섰다. 윤지의 모습은 털끝하나 보이지 않았다. 골목 구석구석을 뒤지다 보니 이미 해가 떠 밝아졌다.

윤지를 찾지 못한 이연이 털레털레 대문으로 들어섰다. 아까의 난리 통에 어수선해진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와 하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마루에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문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뒤를 힐끔힐끔 바라봤다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금방 풀이 죽었다. 이연은 윤지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산산이 부서진 거울 조각과 간혹 묻어있는 핏자국이 그녀를 반겼다. 한참 그 풍경을 응시하던 이연은 무릎을 굽혀 조각을 집어 들었다. 조각의 끄트머리에 분홍빛 선혈이 들러붙어있었다. 나머지 조각도 손으로 하나씩 집어 올렸다. 날카로운 조각에 손이 베였다. 이연의 피가 떨어져 윤지의 핏자국을 덮는다. 알싸한 통증이 퍼진다. 순간 손에 힘이 빠져 조각을 놓친 탓에 큰 조각이 떨어지며 박살났다. 빗자루를 들고 나타난 하나가 달려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챈다.

결국 이연은 방에서 내쫓기고 하나와 할머니가 방의 거울조각을 치웠다. 방 앞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연 옆에 하나가 주저앉았다. 하나는 손에 들고 있던 주스를 이연에게 건넸다. 이연이 그것을 받아들고 입술을 축였다. 달콤한 딸기과육이 물컹하게 씹혔다. 그것을 천천히 짓이기며 음미했다.

“언니 괜찮아요?”

“…….”

“많이 놀랐죠, 언니.”

“응 조금…….”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어느새 주스가 바닥을 보였다. 이연이 남은 한 방울을 탈탈 털어내며 입맛을 다셨다.

“더 마실래요?”

딸기주스가 담긴 유리병을 흔들며 하나가 물었다. 이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액체가 꿀렁이며 유리컵을 채운다. 주스를 한 모금 마신 이연이 입을 열었다.

“윤지는 괜찮을까?”

“괜찮을 거예요. 예전에도 이러다 들어왔었어요.”

“예전에도?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우리 엄마, 죽었을 때.”

하나의 엄마는 윤지의 언니 윤영이었다. 세 살 터울의 자매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컸다. 집을 나갔던 윤지의 엄마가 덜컥 남자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뱃속에는 윤지, 손에는 언니 윤영과 함께. 자매의 아버지는 얼굴만 반반한 도박꾼이었다. 연애시절 온갖 매너를 부리며 윤지의 엄마를 사로잡은 그는 결혼을 하고 돌변했다. 뭐, 잘못된 배우자를 만난 흔한 이야기였다. 도박으로 돈을 날린 남자를 데리고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남자는 도박을 끊는 듯 보였지만 결국 술과 여자라는 또 다른 구덩이에 빠져 가족을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다행인 것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도망을 친 것이었다. 소문을 듣자니 근처 술집에서 일하던 한 여자가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 윤지의 엄마는 남자를 찾아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며칠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밖으로만 나가며 남자를 찾던 그녀는 날로 메말라갔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던 일은 한 달 후 멈췄고, 그 날 윤지의 엄마는 자매를 이끌고 옷가게에 갔다. 그녀는 색색의 원피스와 책가방, 연필 따위의 필기구를 잔뜩 자매에게 선물해줬다. 갑자기 떨어진 새 물건들은 자매를 기쁨으로 홀렸다. 매장을 쏘다니며 이것저것 담는 자매를 그녀는 그저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날 그렇게도 먹고 싶던 짜장면을 먹었다.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채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기는 중국집에 들어선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매는 검은 소스가 가득 뿌려진 짜장면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그것을 엄마가 비벼서 건네주자 코를 박고 마구 입에 집어넣었다. 달고 기름진 면이 입속에 가득 찰 때가지.

자매는 통통하게 부푼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제 엄마가 사준 물건들을 보여주며 재잘거렸다. 짜장면이 너무 맛있었다며 꼭 할머니도 다음에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더랬다. 엄마는 웃으며 자매의 손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밤, 그렇게 그녀는 자매를 버리고 사라졌다.

윤영과 윤지는 그 날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사이 윤영이 고등학생이 되던 해, 덜컥 임신을 하고 말았다. 아이의 아빠는 알 수 없었다. 그걸 알고 있을 윤영이 입에 접착제를 칠한 마냥 꾹 다물고 방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하나가 태어났고, 할머니와 윤지, 윤영, 하나 네 식구가 되었다.

그때 당시 윤지는 중학생이었다. 먹을 것을 좋아해서 체격이 다른 아이들보다 컸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윤지에게 늘 넘치도록 음식을 주는 할머니는 환상의 콤비이자 경계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 즈음, 윤지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툭하면 발을 걸거나, 때리는 것은 물론 용돈을 빼앗고 심부름도 서슴없이 시켰다. 윤지가 반항을 할 때마다 윤지의 언니를 들먹이며 소문을 퍼트리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윤지는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살을 빼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미치도록 혐오스러웠다. 윤지는 식음을 전폐하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 입에 털어 넣지 않고 사나흘을 버티다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많은 음식을 몰아넣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날 밤에 모든 것을 게워냈다. 그 행동이 반복되자 윤영은 윤지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병원으로 데려가려 했다. 병원에 가려는 자와 끌려가지 않으려는 자의 끊이지 않는 싸움이 매일같이 집안에서 벌어졌고, 사건이 터졌다.

사건이 있던 날 할머니는 평소처럼 음식을 차려놓고 윤지를 불렀다. 윤영과 합심하여 손녀의 식이장애를 고치기 위해 조금이라도 먹이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윤지는 나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고, 어린 하나가 열이 올라 잔뜩 예민해져있던 윤영은 덜컥 윤지를 잡아끌고 나와 밥상에 앉혔다.

“얼른 먹어! 너 밥 안 먹은 게 며칠 째야?”

“안 먹어. 나 살 뺄 거야.”

윤영이 윤지의 입에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굳건히 입을 다문 윤지는 숟가락을 손으로 쳐내버렸다. 자매의 냉랭한 기운에 어쩔 줄 몰라 하던 할머니가 윤영을 말려보지만 윤영의 화는 머리끝까지 나버린 상태였다.

“너, 살 뺀답시고 밥 굶고 그러다가 또 폭식하고. 그거 너 병이야! 큰일 난다고! 병원 가자니까?”

윤지는 귓등으로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영이 윤지의 팔을 붙잡고 자리에 주저앉혔다. 윤지는 윤영의 손을 뜯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손아귀의 억센 힘이 윤지의 팔에 붉게 물들었다.

“아 그만 좀 해! 내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언니는 언니 앞가림이나 잘해!”

윤지가 씩씩대며 윤영을 노려보고는 윤영의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갔다. 윤영이 뒤따라나가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하는 수 없이 윤영이 하나를 받아들고 어르며 문 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윤지는 그 날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외박은 한 적이 없었던 터라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를 재우고 난 윤영이 자지도 않고 윤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손에는 푸른 줄넘기를 꼭 쥐고 하염없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해가 뜨고 소란스러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윤영이 윤지의 가방을 챙겨들고 문을 나섰다. 하나는 할머니에게 잠시 부탁했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는 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을 준다는 핑계로 그녀를 만날 생각을 한 것이다. 교문 안으로 윤영이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문 앞을 막은 경비원과 선생에게는 학생의 이름을 대며 물건을 전해주러 왔다 이야기했다. 3학년 교실이 있는 3층에 다다르는 동안 교복을 입고 이야기하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보였다. 뭐가 좋은지 깔깔 웃어대는 모습에 빛이 났다.

윤영은 그녀가 3학년인 것만 알 뿐 몇 반인지는 알지 못했기에 반 하나하나를 둘러보며 행방을 물어보았다. 어느 학생이 쓰레기장 근처에 가는 것을 봤다기에 다시 건물을 나와 그곳으로 향했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썼다. 이윽고 둔탁한 소리가 몇 번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윤영이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가 나는 틈에 고개를 살짝 밀어 넣었다. 윤영이 비명이 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둥그렇게 둘러싼 가운데에 웅크려있는 아이. 윤지였다.

“오늘은 왜 늦었어? 야, 너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지?”

칼 단발을 한 여학생이 침을 뱉으며 바닥을 짚은 윤지의 손을 짓눌렀다. 윤지가 다른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삼켰다. 다른 아이가 윤지의 마이를 뒤지고 바닥으로 내던졌다.

“아무것도 없어.”

“돈 가지고 오랬더니 왜 한 푼도 없어?”

낮게 욕을 내뱉고는 윤지를 발로 찼다. 그리고 윤지의 얼굴을 손으로 뭉개듯이 누르고는 흔들었다.

“야, 이 살 좀 봐. 너 살 빼고 있긴 하냐? 어떻게 된 게 계속 불어.”

주위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보다 못한 윤영이 한 발짝을 떼려다가, 이내 뒷걸음질을 치고 내달렸다.

“너 언니 안 지킬 거야? 네 언니 고딩 때 임신해서 자퇴했다며. 그거 소문나도 좋아?”

“아, 아니.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그니까 언니는 건들지 말아줘 제발.”

윤지가 눈물을 흘리며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얻어맞은 군데군데에 검은 신발자국이 낭자한 채로,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그렇게 언니를 지켰다.

“그 날 저녁에 이모는 들어왔는데, 엄마가 안 들어왔어요. 알고 보니까 바다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발을 헛디뎠대요. 이모가 말해줬어요.”

하나가 남은 딸기주스를 털어 넣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연은 쥐고 있던 주스를 반쯤 남긴 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컵 겉에 맺힌 물방울이 허벅지로 떨어졌다. 이연이 말하지 않자, 하나가 일어나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 웃음에 이연 또한 입꼬리를 올려 마주봐 주었다.

결국 윤지는 집에 오지 않았다. 하나와 할머니는 별거 아니라는 듯 행동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연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따지고 보면 윤지의 가출은 이연의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윤지가 오기만을 기다리거나, 밖으로 나가 그녀를 찾아다녔다. 사흘이 지나던 날,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서부 경찰서 진훈입니다. 혹시 이윤지씨 되십니까?”

이연은 바로 전화를 던지고 허겁지겁 신발을 꿰어 신었다. 그대로 내달려가는 이연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불안감에 휩싸여 뒤를 쫓아갔다. 금세 경찰서에 도착한 이연이 숨을 몰아쉬며 전화를 한 경찰을 찾았다. 경찰은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이연을 보고는 소리쳤다.

“정이연씨! 맞죠?”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뺑소니 사고 가해자가 잡혔습니다. 그래서 연락드렸어요.”

순간 이연의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발을 동동 구르던 하나와 할머니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찰에게 재차 확인했다. 경찰이란 소리만 듣고 달려 나온 탓이 컸다. 숨을 돌린 이연이 정신을 추스르고 가해자를 만나겠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알겠다고 했다. 경찰을 따라 간 곳에 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남자가 이연을 보더니 쏜살같이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

이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쏟는 남자 때문에 경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남자를 뜯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얼마나 힘이 억센지 바지가 치즈마냥 늘어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저 아직 장가도 못 갔단 말이에요.”

남자가 훌쩍이며 말했다. 이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가만히 남자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 움찔한 남자가 고개를 내리깔았다. 몇 분을 더 서 있던 이연이 뒤를 돌아 걸어 나갔다.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이연이 발레를 그만두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다. 그 당시 유망한 발레리나로 촉망받던 그녀는 곧 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먼저 엄마만 그녀를 따라가게 되었기에 아빠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고 가족들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여행길에 오르던 전 날, 아빠의 퇴근이 늦어졌다. 늦은 퇴근에 지친 가족은 늦잠을 자버렸다. 누군가가 알람을 꺼 놓지만 않았어도 여유롭게 공항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허겁지겁 가방을 싸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조금만 빨랐으면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늦어진 탓에 아빠는 지름길로 차를 몰았다. 늦은 밤, 맞은편으로 달려오던 화물차가 그대로 중앙선을 넘어 가족의 차를 들이받았다. 힘에 밀린 차는 보호난간을 넘어 풀숲으로 굴렀고 이연은 중상을 입고 한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깨어났을 땐, 엄마와 아빠는 그녀의 곁에 남아있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이연은 낯선 이의 집에 들어온 양 어색했다. 착 가라앉은 공기가 무겁고도 차가웠다. 이연은 집에 남은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했다. 쌓아두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나온 물건을 모두 넣어도 박스 두 개 뿐이었다. 이연은 아무도 몰래 박스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온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사고 당시 후유증으로 골반을 심하게 다쳐 이연에게 남은 발레마저도 등을 돌렸다. 이연에게 남은 기둥은 하나도 없었다. 발레를 그만두고 이연은 살이 쪄 갔고 더 이상 찾아오는 이들도 없어졌다. 이따금씩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자면 이토록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처음 달고 기름진 것이 뱃속으로 들어차는 순간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었다.

동면하듯 잠을 자고 일어나 생 라면을 깨부숴 먹는 이연의 발끝에 작은 보석상자가 채였다. 그 안에는 아빠가 엄마에게 선물한 금 귀걸이 두 쌍이 나란히 들어있었다. 이연이 그것을 그대로 상자에 던져 넣으려다가 한 쌍을 자신의 귀에 걸어보았다. 반짝이는 귀걸이가 빛을 내뿜었다.

생 라면을 먹은 탓일까. 뱃속에서 우렁찬 고동이 울려 퍼졌다. 텅 빈 배에서 무언가를 채워 달라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연은 배를 부여잡고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서 찬 냉기가 뿜어져 나와 얼굴을 스쳤다. 들어오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떤 이연이 고개를 들이밀고 먹을 것을 찾았다. 아무것도 없다. 찬 공기만 가득 들어있었던 모양이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부엌 이곳저곳을 뒤졌다. 선반 아래에 끼어있던 땅콩 빵을 발견했다. 마실 것은 없어서 수돗물로 대충 씻은 컵에 다시 꼭지를 열어 물을 받았다. 잡동사니를 대충 손으로 밀쳐낸 이연이 자리에 털썩 앉아 빵의 봉지를 깠다. 한 입을 크게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봉지를 이리저리 뒤집어 본다. 그녀의 눈에 또렷이 적힌 숫자가 눈에 띄었다. 2020년 12월 01일. 날짜가 한참 지난 빵이었다.

이연은 한 입을 먹어버린 빵을 봉지에 넣고 물로 입을 헹궜다. 그리고 또 다시 온 집안을 뒤졌다. 먹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한숨을 쉬며 이연이 털썩 주저앉았다. 버릇처럼 귀를 만지작거리던 이연의 손에 차가운 금속이 만져졌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노트북을 꺼내와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연이 향한 곳은 금 시세 거래 사이트였다. 지난 거래 19만원, 오늘 18만원이라고 찍힌 숫자를 보며 귀를 수십 번 만지작거린다. 이내 화면을 끄고 봉지에 넣어 던져두었던 유통기한 지난 빵을 주워들었다. 빵을 조금씩 뜯어 물과 함께 씹어 삼켰다.

다음 날, 17만원이 되었다.

또 다음 날, 18만원이 되었다. 이연은 옷장 틈새에서 찾은 누군가의 비상금으로 도시락을 사 먹었다.

또, 또 다음 날, 16만원이 되었다. 이연은 그 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불 속에 남아있었다.

그 다음 날, 22만원이 되었다. 22라는 숫자가 반짝이는 화면을 바라보며 이연은 눈을 거세게 비볐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선명한 숫자가 이연을 반겨주었다. 그 길로 귀걸이를 가지고 나온 이연은 금은방 앞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유품을 해 본답시고 착용하고 본 거울에 비친 자신이 나름 괜찮아 보였다. 그게 다였다. 그 이후 그녀는 작은 보석 상자에 넣을 금으로 된 장신구를 해적이 보물을 찾듯 되는 대로 사들였다.

그 무렵 이연을 만나고자 했던 사고의 가해자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용서해달라고, 몰랐다고,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은 가장이라고 했던가. 아이가 불쌍하지 않느냐며 이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었다. 옛 기억이 떠올라 속이 뒤틀렸다. 이연이 얼굴을 찡그리자, 하나가 다가왔다.

“언니 어디 아파요?”

“아냐, 그냥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

하나가 방으로 들어가고, 이연만 마루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걸터앉아 발을 앞뒤로 흔들거리는데 뒤꿈치에 무언가 걸려 둔탁한 소리가 났다. 허리를 굽혀 살펴봤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손을 집어넣은 이연이 팔을 휘적거리자 무언가의 모서리가 닿았다. 그 모서리를 잡아당기니 보라색 선물 상자가 딸려 나왔다. 리본이 예쁘게 장식된 상자에는 윤지의 필체로 ‘이연에게’라는 꼬리표도 함께 붙어있었다.

상자에는 편지와 비디오테이프, 푸른색 발레슈즈, 공연 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이연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 주려고 한 모양인지, 편지에는 저번 주 날짜가 찍혀있었다.

나에게 꿈을 안겨준 친구 이연아.

내가 네게 받은 것들을 돌려줄게. 정말 고마웠어.

-너의 친구 윤지가-

이연은 중학교 때 그녀에게 발레슈즈를 선물했던 사실을 그제야 기억해냈다. 상자에 담겨있던 푸른 발레슈즈는 이연이 아끼던 그것이었다. 자신의 춤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아이윤지의 얼굴이 꿈을 이루었다는 어른윤지의 말과 겹쳤다.

비디오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하나가 테이프를 넣는 곳을 알려주며 기계를 작동시켰다. 한참을 지지직거리던 검은 화면이 빛과 함께 전환됐다.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백조의 호수. 하나가 질리도록 틀어두었던 그 노래, 이연이 죽도록 춤추고 싶어 했던 그 노래. 영상에 한 여자아이가 톡 튀어나왔다. 하얀 튀튀를 입고 머리에 깃털로 된 관을 쓴 걸보니, 백조였다. 한 떨기 꽃처럼 유려한 동작이 이어졌다.

“어, 이거.”

하나가 반가운 기색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이모가 계속 보던 영상이다. 이거, 언니 맞죠?”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나를 쳐다봤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영상을 자세히 봤다. 화면에서 여자아이의 얼굴이 또렷하게 잡혔다. 이연이었다. 입을 헤 벌리고 화면을 보던 하나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영상이 끝나고 화면이 꺼진 자리에 비친 인영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연은 한참을 앉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윤지의 공연 날짜가 다가왔다. 이연은 종이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서기 전 할머니 방에서 거울을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달았다. 은빛 귀걸이였다. 짧은 편지가 들어있던 상자에 비닐로 포장된 귀걸이도 들어있었다.

ps.넌 은이 어울려. 요상하게 금 귀걸이 주렁주렁 달지 말고 이거 해!

피식 웃음을 흘린 이연이 귀걸이를 떼어내고 새 것을 달려고 안간힘을 썼다.

“언니 뭐 해요, 늦겠어요!”

하나가 문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연을 재촉했다.

“아, 알았어! 금방 갈게.”

이연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화장대 모서리를 무릎으로 치고 말았다. 위에 늘어서 있던 병들이 진동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소리에 놀란 하나가 방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깨진 것은 없었다. 이연이 제자리로 병들을 올려두고 일어났다. 하나의 손을 오른쪽에 꼭 쥐고 할머니의 손을 왼손에 쥔 채, 공연장으로 나섰다.

커다란 건물이 세 사람 앞에 버티고 있었다. 집의 몇 배는 돼 보이는 건물을 보고 하나가 방방 뛰며 신나했다. 이연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소란스러운 인파를 비집고 이연과 일행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관객석의 반대편은 아직 암흑에 휩싸여 속을 알 수가 없다. 공연장에 온 순간부터 이연은 하나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꼭 쥔 손에는 땀이 배어 나왔다. 공연장에 들어온 이연의 시선은 암흑에 잠긴 공간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빛이 들어오고, 무대가 광활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호들갑을 떨던 하나도 입을 다물고 무대를 바라봤다. 순간 관객석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아 몇 분간 이어졌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 고요를 비집고 파고들었다.

공연이 꽤 흘러갔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윤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지 않은 것일까. 이연이 포기했을 무렵, 할머니가 이연의 팔을 쿡쿡 찌르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그 손끝이 가리킨 곳은 무대의 가장 구석이었다. 무대의 구석에 백조의 무리가 된 윤지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연이 중얼거렸다.

“코르 드 발레.”

무대 위에 설 수 있지만 솔로를 추지 않는 무용수를 코르 드 발레라고 했다. 당연히 무대의 중앙에 윤지가 있을 것이라 여겼던 이연은 찾지 못했을 위치였던 것이다. 무리 속에서 춤을 추는 윤지의 모습을 바라본다. 서로의 움직임에 맞춰 변화하는 대형은 텅 빈 무대를 꽉 채울 만큼 풍성하게 이어졌다. 이연은 끊임없이 윤지의 움직임을 쫓고 쫓았다. 윤지의 군무가 절정을 향해갔다. 이연은 그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 가방을 찌그러트리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무리 속의 윤지는 아름다웠다.

막이 내려가고, 박수가 공연장 가득 울려 펴졌다. 무대의 빛 아래 서 있는 그들은 조명보다 반짝였다. 많은 무용수 사이에서 인사를 하는 윤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연은 손을 들어 빨개지도록 박수를 보냈다. 그 무대 위,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 있는 그녀를 향해서. 그녀가 이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윤지가 해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대가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주위가 어수선했다. 이연은 두 사람의 손을 붙잡고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누군가 이연의 등을 톡톡 친다. 뒤를 획 돌아보니 윤지가 서 있었다. 이연이 말없이 바라봤다. 윤지가 이연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안, 안녕. 왔구나.”

“응. 안녕. 공연 잘 봤어.”

윤지가 멋쩍은 듯 머리를 만졌다. 윤지에게서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밀려왔다. 이연이 고개를 숙이고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뒤적거렸다. 이내 그녀의 손에 딸려 나온 것을 윤지의 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윤지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받아들었다. 매끈한 촉감에 단단한 앞코를 가진 발레슈즈였다. 관객석의 조명이 켜져 슈즈의 푸른 빛깔이 은은하게 빛났다. 눈을 동그랗게 뜬 윤지가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거 주려고 왔어.”

“이거, 돌려준 거야. 받을 수 없어.”

“알아. 하지만 이건 이제 너한테 더 잘 어울려.”

이연이 피식 웃으며 윤지에게 슈즈를 떠넘기듯 안기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이미 오래전에 준 거잖아? 네 거야 윤지야. 정 그러면 나를 다시 일으켜준 보답이라고 생각해.”

발레슈즈를 잡은 두 손이 서로를 꼭 맞잡는다. 윤지가 이연의 얼굴을 보고 웃는다. 이연이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하나와 할머니가 그 손 위에 턱 자신의 손을 올리고 하나가 나도 끼워달라고 칭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와 이연, 모두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해적의 상자는 말끔히 털렸다. 집에 있던 작은 보석 상자에는 이제 엄마의 유품 두 쌍 뿐이다. 이연은 집으로 돌아와 모든 금을 팔아치웠다. 떨어진 시세 탓에 산만큼은 남길 수는 없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빈 상자를 보며 이연은 씩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안 끝났어? 왜 이렇게 굼뜨셔?”

윤지가 소리쳤다. 한껏 투덜거리며 문으로 들어서는 윤지 뒤로 하나가 손을 들어 흔들며 방방 뛰었다. 현관에 내어놓은 쓰레기봉투를 보며 기함했다. 쓸 만한 물건을 담은 상자를 빼고 나머지를 담은 봉투는 빵빵한 배를 내밀고 현관에 차곡차곡 쌓였다. 다섯 봉지나 되는 것을 이연은 하나씩 날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자를 날랐다. 상자마저 빠지고 난 방을 둘러본다. 이연이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밖에서 윤지가 이연을 재촉한다.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보는 이연의 귀에 은색 귀걸이가 반짝였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윤지가 이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나는 벌써 저만치 앞으로 가서는 뒤를 돌아보고 이연을 재촉한다.

녹색 문을 열면, 양철갑옷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고소한 밥 냄새가 풍겨온다. 문을 들어선 그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다녀왔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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