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산다는 건 말뿐이에요”

제주시 연동 신광로에서 카페 ‘헤이커피’를 운영하는 오은경(55)ㆍ황하늘(25) 모자가 지난 11월 10일 열린 ‘2023 제주시 소상공인 한마음 박람회’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시 연동 신광로에서 카페 ‘헤이커피’를 운영하는 오은경(55)ㆍ황하늘(25) 모자가 지난 11월 10일 열린 ‘2023 제주시 소상공인 한마음 박람회’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헤이카페 점포 맞은편에서 주상복합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헤이카페 점포 맞은편에서 주상복합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제주의 강남’으로 불리는 제주시 노형동과 연동은 이미 강남구의 행정동 평균 인구수를 가뿐히 돌파한다. 인구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인프라 등 지역 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양극화는 같은 상권 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인기 창업 업종 ‘카페’를 통해 상권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제공하는 ‘상권분석시스템’(sg.sbiz.or.kr)에서 분석한 결과, 주요 상권 노형동에 ‘카페’를 업종으로 하는 업소수는 171개로 월평균 추정매출이 1279만원이다. 한편 연동은 노형동보다 업소수가 적은 데 비해 1276만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활발한 카페 시장 현황을 ‘외형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동 신광로에서 카페 ‘헤이커피’를 차린 오은경(55)씨는 “‘소상공인들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산다’는 표어는 말뿐”이라며 “현실은 각자도생”이라고 호소했다.

인구 만명당 가맹점수  제주가 가장 많아

은경씨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고자 숙박시설과 고깃집이 많은 신광로에 터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속하게도 유명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들어섰다. 커피를 컵 가득 채워 2000원에 파는 파격 마케팅을 따라잡으려 커피값을 동일하게 책정했지만 올해는 원두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500원 더 매겨 판매하고 있다. 결국 출혈경쟁에서 뒤처졌다. “아무리 가맹점이라도 자기가 자기 돈 들여 창업하는 건데…. 무작정 가맹점을 제지해달라기는 어렵죠.”

통계청이 작년에 발표한 ‘2021년 프랜차이즈(가맹점)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가맹점수는 26만개로 전년도와 비교해 10.6%(2만 5천개) 증가했다. 개중 ‘커피ㆍ비알코올음료’ 업종 가맹점수는 전년 대비 14.5% 상승하며 인기 가맹사업 대열에 올랐다. 전국적으로 가맹점수가 늘고 있지만 인구 만명당 가맹점수는 제주가 61.5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는 비단 개인사업주만의 애로사항은 아니다. 같은 업종의 가맹점들이 창궐하자 가맹점주들도 ‘출점 제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에 영세한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점포 간 거리를 제한하는 ‘모범거래기준’을 발표한 바 있으나 기업 활동 약화 등을 우려해 폐지했다.

김정희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 프랜차이즈 대거 입점 현상에 관해 “(대형 프랜차이즈는) 브랜드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직력도 약하고 인지도도 떨어지는 기존 지역 기반 소상공인들이 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지역경제 차원에서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등 소상공인에게 생계 위협이 될 수 있고, 국제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 지역의 자본이 외지로 이탈되는 부분이 다소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유독 제주에 많이 입점한 요인으로 ‘새로운 인구 유입’과 ‘관광도시로의 발달에 따른 건설업 성장’을 꼽았다. 그는 “신규 건물 대부분에 프랜차이즈들이 입점하는데 대표적인 게 커피숍, 편의점, 통신회사”라며 “지역 경제는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강형석 제주특별자치도 소상공인경영지원센터 차장은 가맹점 활성화 배경을 두고 “옛날에는 개인 빵집이 잘 됐지만 이제는 고정 손님이 있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가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2년 6개월에서 3년 이내에 자기가 투자한 원금을 뽑을 수 있으면 그 사업은 괜찮은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사업으로는 그게 어렵다”고 덧붙였다.

피할 수 없는 신축공사 ‘공격’

커피만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려워지자 아들 황하늘(25)씨는 은경씨가 넌지시 던진 사업 아이템 ‘비트’를 가지고 메뉴 개발에 돌입했다. 1년 반의 연구 끝에 지금의 시그니처 메뉴인 비트 스무디, 비트 라테, 비트 레모네이드가 탄생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경씨 가게 코앞에서 주상복합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2026년 7월에 마무리 예정이라는 공사 소식에 은경씨는 가게 이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바리스타를 꿈꾼 아들을 위해 마련한 보금자리가 3년도 채 안 돼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여기 상인들과 상의도 없이 시청에 허가를 받았더라고요. 그냥 밀어붙이는 거죠. 보상 문제로 한여름에 데모도 하고 그랬어요. 이 작은 공간에서 매일같이 벽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요. 아들은 병원 가서 편두통 약까지 받아왔는데 소음 문제에 대한 피해보상이 일절 없습니다. 시청에 몇 번이나 민원을 넣었는데 한 번 와서 보고는 기준치에 이상이 없다며 가버리고….”

하늘씨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개발한 수제 쿠키들은 여태 진열대에서 즉석 판매해 왔지만, 공사 먼지 때문에 주문 제작 체제로 바꿨다. 은경씨는 방법이 없었다. 대기업을 상대하기에 소상공인들은 힘이 없다.

은경씨는 시공사 측 보상 연락 여부에 관해 “공사 벽에 현수막을 걸어서 가게를 홍보해주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골목 자체에 사람이 안 다닌다”며 “현장 사람들이라도 와서 좀 팔아주면 도움이 되겠다”고 씁쓸해했다. 가게 운영 환경 개선을 위해 ‘알맹이’가 담긴 보상 마련이 시급하다.

한목소리 내기 힘든 소상공인… 이유는?

공사로 인해 주차 문제까지 생기자 주변 가게들끼리 싸우는 일도 생겼다. 상인들끼리 협력은 고사하고 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다. 은경씨는 소상공인연합회에 가입했지만 막상 도움이 절실할 때 실질적인 지원이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 골목에는 연합회에 가입한 분이 안 계세요. 왜 가입을 안 하시는지 물으니 소상공인 다 죽이는 이 골목도 누가 도와줄 생각을 안 하는데 혜택이 있기는 하냐고 되물으시더라고요. 우리는 변호사가 아니라 같이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진정으로 소상공인을 위한다면 직접 찾아다니면서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야 연합회도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조직 형성은 정부 지원 사업에서도 필수로 요구된다. 제주도는 작년 4월 침체된 골목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제주특별자치도 골목형 상점가 기준 및 지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실효성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지정 요건은 2000㎡ 이내에 소상공인 운영 점포 30개 이상 밀집하며 상인조직(동일구역 1개 이내)이 갖춰진 구역이다.

가게에만 상주해서는 장사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은경씨는 행사에서 부스를 운영하며 실적을 내고 있다. 제주카페스타와 농수축 박람회에 이어 지난 11월 10일에는 제주시 소상공인연합회가 오일장에서 주최한 ‘2023 제주시 소상공인 한마음 박람회’에 참여해 커피를 팔았다. 예상은 했지만 장날이 아닌 오일장은 한산했다. 사람도 안 모이는데 날도 추워 중간에 빠져나가는 부스 운영팀도 있었다. 은경씨는 “행사 며칠 전에 모여서 제비뽑기로 자리를 선정하다 보니 다른 업종 부스끼리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며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버리니까 우리만 덩그러니 남아서 문을 금방 닫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행사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씨는 “소상공인을 대변하느라 고생하시는 건 알지만 실감은 잘 안 된다”며 행사 준비 과정에서 소상공인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데 아쉬움을 드러냈다.

상생하는 지역경제의 근간은 ‘소비자’

은경씨는 “직원도 없이 버티는 진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 부족하다”며 “소상공인의 기준을 매출로 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침을 놓았다. 청년 창업 대출을 신청한 하늘씨도 상당 금액을 먼저 부담한 후 일정 기간의 매출을 증명했을 때 비로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창업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선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강형석 소상공인경영지원센터 차장은 “이제는 돈 없이 창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라며 “센터에서도 이자 관련 추천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대출 여부는 은행 몫이라 사실상 지원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센터가 창업 지원보다는 현 소상공인 역량 강화에 주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는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컨설팅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니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자문에 응한 김정희 교수와 소상공인경영지원센터가 공통으로 언급한 상생하는 지역경제의 근간은 ‘소비자’다. 김 교수는 “커피 한 잔을 사러 갈 때도 미리 배달앱으로 주문해두는 경우가 있는데 수수료가 점포로 가지 않기 때문에 손실을 일으킨다”며 “현장 방문을 할 거라면 가능한 플랫폼을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고행범 소상공인경영지원센터장도 “학생들이 많이 찾아가야 상권이 산다”며 “자주 찾는 상권 근처의 골목상권에도 관심을 갖고 발걸음 해줬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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