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마스크스 / 김수열 / 아시아 / 2020

제주 BOOK카페 <37>

호모 마스크스 / 김수열 / 아시아 / 2020
호모 마스크스 / 김수열 / 아시아 / 2020

제주의 쉰들러라 불리는 문형순은 오등동에 있는 평안도민회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뒤늦게 국가유공자로 인정이 되면서 오는 5월에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국가보훈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것은 4·3 당시 무고한 양민을 살려서가 아니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것은 늦게나마 잘 된 일인데, 진작에 4·3 당시의 행동에 대한 유공자 인정이 되었어야 하는 인물이다. 

독립운동을 했으나 자료가 부족하다고 거절당하고, 한국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전투사령부에서 근무한 이력을 확인하고 독립유공이 아닌 참전유공으로 인정이 됐다. 어찌 됐든 국가유공자로 인정이 됐지만, 독립운동이나 4·3 당시의 행적이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문형순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광복군 소속으로 항일무장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 후에는 제주경찰청 기동경비대장으로 근무했다. 4·3이 한창이던 1949년 모슬포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 즉결처분을 앞둔 수백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1950년 성산포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상부의 명령을 불이행하고 주민들의 생명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노년은 쓸쓸했다. 퇴직 후 무근성에서 쌀배급소 직원, 대한극장 매표원 으로 일하다 1966년 향년 70세의 나이로 제주도립병원에서 가족도 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모슬포 진개동산에는 그의 공덕비가 있고, 제주경찰청에는 그의 흉상이 있다.

김수열 시집 『호모 마스크스』에 문형순 이야기를 쓴 시 「아름다운 일생」이 있다. “그는 지금 오등동 산11-1번지에 잠들어 있다”로 시작해 대한극장 검표원, 쌀배급소 직원을 하던 노년기를 먼저 말한다. 퇴직 후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보여주다가 관할구역 주민에 대한 총살명령을 ‘부당하므로 불이행’하여 맞서 목숨을 살린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군이 되어 무장투쟁을 하던 청년 문형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삼성혈 앞에서 찍은 그의 사진이 백과사전에 있다. 건장한 체구에 강단이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 친일 경찰이었던 그 당시에 그는 독립군 출신이기에 상관들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다. 

요즘은 독신이 많은 시대이지만, 당시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사는 모습은 흔치 않다. 분단 이후에는 고향에 가지 못해 더 많이 외로웠을 테다. 따뜻한 5월에 그의 묘지가 양지 바른 곳으로 천리를 한다. 그래도 이제 새로운 봄빛을 받아 엷게 웃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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