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2) 주거, 부유하는 삶과 유예된 삶 사이에서

김 태 연 사회학과 석사과정

절망의 시대에 한국 청년으로 사는 것은 고단하다. 20~30대 청년 100명 가운데 과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지방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서사를 갖는다. 그렇다면 제주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 가지 키워드로 제주에 사는 청년의 삶을 들여다본다.

스승님께서 일러주신 이야기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에서 가장 우선으로 꼽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衣)였을 것이다. 외부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필수품이지만 옷감을 구하는 것도 옷을 지어 입는 일도 어려웠던 탓이다. 근대를 거치면서 순위가 뒤바뀌었다. 옷과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현대에선 ‘주’(住)가 으뜸이다. 소득에 비해 턱없이 높은 비용을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집을 얻지 못하면 도시의 유목민으로 살아야 한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을 등에 업은 주거 자본주의는 한국 사회에도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랐다. 집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은 멀어져만 갔다. 불평등의 파동은 청년에게 더욱 가혹하다. 청년 실업, 노동 유연화로 인한 사회 진입 장벽은 도시에 사는 청년을 ‘주거 빈민층’으로 내몬다. ‘지옥고’(반지하ㆍ옥탑방ㆍ고시원)라 일컫는 곳을 전전하며 주거비 부담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청년 시인 김소월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섭대일 땅이 있다면’을 읊조렸다면 오늘날의 청년들은 ‘바라건대 우리에게 누워 지낼 곳이 있다면’을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탈제주’에 성공한 새내기를 기다리는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학교 기숙사에 살 수 있다면 한시름은 덜겠지만, 낮지 않은 비율이 ‘부유’하는 존재로 도시유목민에 편입된다. 반대로 제주에 남아 집밥 먹고 지내는 청년들은 등 따시고 배도 부르다. 하지만 자유는 온전하지 못하다. 성인으로서의 역할과 의무가 ‘유예’된 삶이다. 부모나 보호자의 가시거리 안에 있는 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어렵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종신에 가까운 관계망은 자꾸만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이미 얼굴도 잊어버린 엄마 친구 아들이나 아빠 친구 딸의 소식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될 때마다 절로 움츠러든다.

어떻게든 나가살면 되지 않느냐고? 취업을 해도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는 쉽지 않다. 취업난을 뚫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취업을 해서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계약 기간이 애매하게 끝나 무기계약직 전환마저 무산돼버린 친구, 기껏 취업했더니 적응하기가 힘들어 신경안정제를 먹기 시작한 친구,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따로 공부를 하는 친구까지 20대 후반에도 직업적인 안정을 얻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낮은 임금에 비해 생활비 비중도 높은데다 학자금이나 자가용 할부금을 갚다 보면 따로 저축할 여유가 없다. 부모도 이러한 현실을 훤히 알기에 독립을 북돋워주기 보다는 함께 살기를 권한다. 차라리 그 돈을 모아서 필요한 때에 쓰라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압박을 “나가서 살아라”라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 탓에 제주 청년들에게 독립은 분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마침내 분가를 마음먹었을 때 성인이 되고 나서 유예됐던 것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결혼 당사자끼리 번듯한 집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린다. 늦은 취직과 불안정한 직장, 학자금 대출을 갚다 보면 어느덧 서른 안팎이다. 이런 청년들이 가진 자산으로는 도저히 집을 구매할 수 없다. 저임금과 비정규직 비율이 절대적이고 지난 몇 년 사이에 제주도의 집값이 폭등하면서 내 집 마련은커녕 사글세로 집을 얻어 사는 것도 부담이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집을 샀대도 대출금에 허덕이며 불안정한 가계를 떠받쳐야 한다.

오래 만난 연인이 있어도 집 문제를 해결하는 데 뾰족한 수가 없으면 결혼을 자연스레 미루게 되는 경우도 봤으며, 반대로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여건이 갖춰진 덕분에 쉽게 결혼 결심을 하게 되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다. 어렵사리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신혼부부들에게는 다음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모은 돈과 대출을 받아 어떻게든 집을 마련했더라도 고민은 그치지 않는다. 대출의 늪에 다리를 걸친 채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부부들에게 원금과 이자 상환은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인 트레드밀과 다름없다. 불균형한 제주의 산업 구조에서 적은 임금으로 대출금 상환과 더불어 출산과 육아까지 감당하려면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4월부터 제주도내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제주 청년 종합 실태조사’ 결과에도 경제상황 관련 필요한 정책에 모든 연령에서 1순위로 청년층 주거부담 비용을 줄이는 지원 및 정책을 꼽았다. 경제활동별로도 모두 청년층 주거부담 비용을 줄이는 지원 및 정책을 1순위로 가리켰다. 제주도정은 청년 복지카드를 꺼내 들고 도내 공공기관과 협업하며 임대주택 건립을 추진 중이다. 첫 주택의 입주 청약 경쟁률만 51.6:1로 수요는 폭발적이었으나 개발 열풍과 부동산 활황에 갈 곳 없는 청년들을 포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기만 하다. 몇 가지 정책만으로 굳어진 현실을 단숨에 뒤집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1년에 500파운드와 자물쇠를 단 방을 가리키며사유할 수 있는 능력과 홀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임을 강조했다. 나는 이 표현을 빌려 제주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자기만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낼 곳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본디 제주의 주거 방식은 한 울타리 안에 안거리와 밖거리로 공간을 분리해 사는 것이었다. 같이 살더라도 서로의 삶을 존중해왔다. 시대가 변하고 여건이 달라졌다. 같이 살더라도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적어도 남과 비슷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울타리 안으로 자꾸만 몰아넣는 인식만이라도 바뀐다면 함께 살더라도 ‘다른 삶’을 꿈꿔볼 여지가 커진다. 멋대로 살아도 괜찮은, 자기만의 삶을 꾸려갈 사회의 인식이야말로 정책만큼이나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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